제사의 추억

입력
2022.08.29 19:00
25면

편집자주

‘4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말은 사주팔자에서 연유했다. 생활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말과 행동, 관습들을 명리학 관점에서 재미있게 풀어본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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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祭祀)는 천지의 신들과 조상숭배 사상으로 선사시대부터 있었던 오래된 신앙이자 풍습이다.

따라서 제사는 유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제사는 유가 사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사람을 다스리는 도(道)에서 예(禮)보다 필요한 것은 없다. 예에는 오경(五經)이 있는데, 제사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예기(禮記)')

제사는 조정의 예로 규정된 것과 민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황제가 거행하는 제사는 한(漢)대 유교의 국교화와 더불어 전한 말 이후에 그 체제가 정비되었다. 황제제도가 성립되기 이전의 선진(先秦)시대 제왕들의 제사로서는 봉선(封禪)이 유명하다.

유교에서 조상의 영혼은 무덤이 아니라 신주(神主, 位牌)에 있다. 유가에서의 제사는 '죽은 사람의 위(位)를 모시는 나무(牌)'인 신주를 모시고 지내는 것이다. 귀신을 세는 단위를 '위(位)'라고 한다. 주자(朱子, 朱熹)가 정립한 성리학(性理學)이 지배 이념이 되면서 이러한 관념은 더욱 고착됐다. 가장 중요한 물건을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는 속담이 여기서 나왔다.

신주는 조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가문을 상징하기도 한다. 신주로 인한 싸움이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대표적인 사건이 있다.

바로 병호시비(屛虎是非)다. 병호시비는 1620년 퇴계 이황 선생을 모신 여강서원(1676년 호계서원으로 개칭)에 제자인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 중 누구 위패를 좌배향(左配享)에 둘 것이냐를 두고 시작된 논쟁이다. 유가에서는 왼쪽이 상석(上席)으로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은 이유이다. '屛'은 풍산 류씨의 병산서원이고. '虎'는 의성 김씨의 호계서원이다. 즉 서애와 학봉 중 퇴계 제자로서의 서열을 정리하는 두 가문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안동지역 유림도 갈라졌다.

이 분쟁은 2013년 퇴계 좌측에 서애, 우측에 학봉 위패를 모시는 것으로 지역 유림이 합의하면서 종료됐다. 하지만 이후 예안향교 측이 호계서원이 복원된 위치와 서원에 퇴계 위패를 모시는 것 등에 불만을 제기하면서 퇴계 후손들이 퇴계 선생 위패를 모시고 나왔다.

유교에서는 서원에 위패가 없으면 제사 기능이 사라지는 것이다. 400년 지난한 세월이 허망하게 됐다.

유교에서 제례의 공간은 신주가 있는 곳이지 무덤이 아니다. 성묘(省墓) 역시 유교의 산물도 아니고 강조하지도 않는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가야 사람들은 수로왕릉 옆에 사당을 짓고 일 년에 네 차례 제사를 지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설날, 한식, 단오, 추석의 묘제(墓祭)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추석 성묘는 토속신앙이 그 기원으로 유교가 도입되기 전부터 행해졌다. 중국에도 없는 풍속이다.

주자는 집안에 조상의 사당인 가묘(家廟)의 제례는 자세히 규정했으나 무덤의 제례는 별도로 설명하지 않았다. 주자는 묘제에 대해 일 년에 한 번이면 된다고 했다. ('주자가례(朱子家禮)') 이마저도 당시 민간에 널리 퍼진 한식 성묘의 풍습을 존중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은 선조 무덤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유교권 국가 중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이다. 하지만 당시 유학자들도 묘제의 간소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퇴계는 묘제가 예법에 없다고 했고, 율곡도 일 년에 네 차례 묘제는 너무 많다고 했다. 심지어 성호 이익은 성묘는 일 년에 두 차례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제사와 성묘 관습은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기복신앙(祈福信仰)과 연결 짓는다. 퇴계 이황은 "예법에 없어도 풍습에 따라 성묘하고 차례 지내는 건 좋다. 다만 복을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수곡암기(樹谷菴記)') 명분은 조상 공경이지만 속내는 다른 것에 대한 지적이다.

전형일 명리학자·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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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일명리학자·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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