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령씨를 응원합니다

입력
2022.10.05 00:00
26면

이혼녀에 대한 가부장적 고정관념
고정관념을 부추기는 인터넷 담론장
표현의 자유만큼 표현의 절제를 생각할 때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 참석한 이정재(왼쪽)·임세령씨 AP 연합뉴스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 참석한 이정재(왼쪽)·임세령씨 AP 연합뉴스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 '오징어게임'의 주연 이정재 배우와 그의 오랜 기간 동반자인 임세령씨가 함께 참석했다. 여느 셀럽 커플처럼 성장(盛裝)을 하고 다정하게 시상식에 참여하는 장면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히 화려했다. 보기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한 순간 온라인을 뒤덮은 비난 일색의 댓글을 보고 이내 답답해졌다.

심각하게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은 유독 동반자에게 쏠린 비난이었다. 여성을 대상으로 의례 나오는 외모에 대한 비하나 품평만이 아니었다. 많은 댓글은 그녀가 자녀를 가진 이혼녀라는 데 주목하였다. 자녀가 있는 여성이 다른 남자와 어떻게 떳떳이 나설 수 있는가를 따지거나, 이를 문란함으로 규정하였다. 엄마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 대한 비난부터 차라리 결혼을 하라는 훈수, 심지어 전남편에 대한 동정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뿌리 깊은 가부장 담론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말았다. 자녀가 있는 이혼한 남성이 새로운 동반자를 만나 행복한 일상을 영위하는 뉴스에도 비슷한 댓글이 달렸을까 상상해보면 왜 이것이 문제인지를 알 수 있다.

가족은 이래이래야 한다는 고정적인 가족관은 여전히 여성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 이는 단지 고정관념이라는 인식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가부장적 가족주의는 여성들에게는 일상이다. 팬데믹을 지나며 학교와 직장이 문을 닫자 24시간 집에 머무는 가족을 챙기는 주업무는 전업주부건 워킹맘이건 여성에게 주로 짐이 지워졌다. 오죽하면 인터넷상에서 "엄마 말을 듣지 않으면 '코로' 피가 '나'올 것이다"라는 말이 많은 사람에게 웃프게 공감되었겠는가. 코로나 기간 동안 젊은 여성의 우울증 증가율이 다른 집단보다 두드러지게 높게 나타난 것도 고용 불안이나 돌봄노동에 의한 스트레스 증가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오랜 기간 우리 안에 스며 있는 고정관념을 털어내는 일은 물론 쉽지 않다. 세월이 지나면서 낡은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와 성찰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여성의 경제참여율과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등 자연스러운 변화가 우리를 도울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공간이라는 복병은 오히려 남혐, 여혐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고 공존해야 할 두 성(性)을 대치구도로 밀어넣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서로 알게 해주는 미디어는 중립적인 전달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특정한 방향으로 자신을 표현하기를 유도한다. 소셜미디어는 우리에게 매 순간 깊숙이 들어앉은 은밀한 속마음을 털어놓도록 유혹한다. 의견이 갈라지면 더 세게 말해서 주목 끌기를 유도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진실하고 투명한 소통이라고 설파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현실에서는 상대 인간에 대한 존중이나 예의를 이유로 솔직하게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나친 솔직함은 무례함이고 서로 상처 주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속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이 진정한 소통일까?

올바름에 대한 절대적인 잣대는 없다. 어디까지가 성차별이고 어디까지가 성차이인지도 선긋기는 어렵다. 누구나 성차별적이라고 불릴 만한 생각을 품을 순 있다.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그대로 드러내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생각은 자유이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낸 순간 차별이 되고 혐오가 된다. 표현의 자유는 사람들에게 인식이나 사상을 전파할 수 있는 통로가 매우 희소한 상황에서 더욱 존중해야 하는 가치를 지녔지만 현재의 미디어 환경은 완전히 반대의 상황이다. 표현의 장이 너무나 많아진 상황에서는 오히려 사회적·개인적으로 표현의 절제가 더 절실하다. 가족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우리 안의 고정관념은 우리만이 깰 수 있다. '임세령씨 멋져요'라는 댓글을 달고 싶었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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