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토반의 밝지 않은 미래

입력
2022.11.2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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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독일인의 '아우토반' 사랑

일부 독일인은 아우토반의 질주 권리를 미국인의 총기권과 유사한 위상인 시민 자유의 상징으로 여긴다고 한다. 위키미디어

일부 독일인은 아우토반의 질주 권리를 미국인의 총기권과 유사한 위상인 시민 자유의 상징으로 여긴다고 한다. 위키미디어


아우토반(Autobahn)은 독일 자동차 전용도로(망)의 통칭이지만, 흔히 속도 무제한 도로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독일 주요도시를 경유해 인근 9개국 고속도로망과 연결되는 아우토반의 총길이는 1만3,192km. 그중 실제로 법규상 속도 제한이 없는 구간은 약 70.4%다. 어쨌건 독일은 차량 속도 제한이 없는 도로를 보유한 유일한 문명국가다.

아우토반은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이 독일을 유럽 중심 국가로 자리 잡게 하고자 구상한 세계 최초 고속도로 네트워크 프로젝트. 1930년대 나치정권이 대공황기 미국의 뉴딜정책처럼 1차대전 전후의 불황과 실업률 타개를 위한 공공사업으로 건설에 본격 착수했다. 1934년 수도 본과 쾰른 구간이 처음 개통했고, 이듬해 프랑크푸르트-다름슈타트 구간이 열렸다. 아우토반은 ‘질주하는 새로운 독일’의 상징으로, 벤츠 등 독일차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하는 무대로 활용되며 속도에 대한 독일인들의 열망을 충족시켰다. 일부 독일인은 지금도 아우토반을 시민 자유의 상징으로 여긴다. “독일인에게 무제한 질주의 권리는 미국의 총기 소지 권리와 유사한 비중을 지닌다”고 천명한 정치인도 있었다.

2차대전 전시 나치가 휘발유 절감을 위해 단행한 속도 제한(80km/h)을 전후 서독이 나치의 유습이라며 폐지한 것도, 중동 오일쇼크가 한창이던 1973년 11월 24일 두 번째 속도제한(100km/h)이 불과 111일 만에 중단된 것도 그런 문화적, 정서적 영향이 컸다. 지지자들은 아우토반 사고 치사율이 다른 도로보다 오히려 낮다는 점을 부각하곤 한다. 근년 통계에 따르면 아우토반 사고 치사율은 10억km당 1.6명으로 도시 일반도로의 4.9명, 시골 도로의 6.5명보다 낮았다. 보행자 없는 도로라는 점을 간과한 통계라는 반박도 있다.

근년의 저항은 환경운동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들은 과속으로 인한 연료 과소비와 온실가스 등 유해 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속도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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