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음터널 화재로 아내·외동딸 잃은 가장,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입력
2023.01.01 17:35
수정
2023.01.01 19:2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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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부부라 딸이 뇌졸중 앓던 엄마 돌봐
효심 깊은 딸, 성실해 회사서도 인정받아
"부실 원인 철저히 수사하고 대책 세워야"

1일 오후 사흘 전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로 아내와 딸을 잃은 김석종(오른쪽)씨가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1일 오후 사흘 전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로 아내와 딸을 잃은 김석종(오른쪽)씨가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1일 오후 서울 보라매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김석종(65)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김씨는 사흘 전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 화재로 아내와 외동딸을 잃었다. 빈소 제단에는 부인 고(故) 김식자(62)씨와 딸 김연주(29)씨의 영정사진이 나란히 놓였다.

누구보다 위로를 받아야 하지만 그는 오히려 조문 온 딸 친구들의 어깨를 다독이는 등 상주의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조문객이 없으면 북받친 슬픔을 참기 어려운 듯, 아내와 딸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계속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이날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딸과 사고 전날 3번 전화한 게 마지막 통화였다. 그날 집에서 오리고기 먹으면서 주말에 형님네 집들이 가자고 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달 29일 사고 당일 아내와 딸은 평택의 찜질방에 가던 길이었다. 모녀는 서울 구로구 난곡동에 살고, 김씨는 가족과 떨어져 혼자 충남 천안에서 일하는 주말부부였던 탓에 함께하지 못했다. 연주씨는 뇌졸중을 앓아 몸이 불편한 엄마한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는 착한 딸이었다. 김씨는 “화장실 갈 때도 엄마를 부축해 주고 찜질방에도 같이 다니는 등 엄마를 살뜰히 챙겼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경주 여행이 딸과의 마지막 동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딸은 직장에서도 성실하게 일해 동료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연주씨는 한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다 능력을 인정받아 6개월 전 정규직이 됐다. 회사에서도 드문 경우였다고 한다. 빈소에서 만난 한 동료는 “효심도 깊고, 정말 열심히 일하던 분이었는데 너무 허망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제2경인고속도로는 평소 가족이 이용하던 익숙한 길이었다. 김씨는 “딸이 아내를 데리고 서너 번 찜질방에 다녀왔는데, 항상 사고가 난 도로로 오갔다”면서 “그런 데서 변을 당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천안에서 올라오는 길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지만, 딸의 차량번호와 인적사항을 건네받은 뒤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김씨는 “돌이켜 보면 그렇게 불안한 것들(아크릴 방음터널)로 부실하게 만들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다시는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철저하게 수사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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