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일본인데… '강제동원 배상'에 정부는 왜 쩔쩔매나

입력
2023.01.24 13:00
수정
2023.01.2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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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를 겪은 이 땅의 수많은 '문동은'
그 질곡의 아픔 달래지 못하는 정부의 '해법'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한일 외교당국이 16일 도쿄에서 국장급 협의를 갖고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을 논의했다.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국장이 한국 언론에 논의 결과를 설명하는 모습. 연합뉴스

국가 간 관계에서 '더 글로리(Glory·영광)'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창시절 가해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평생을 곱씹으며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가는 30대 여성, 문동은의 이야기입니다. 핵심은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존엄 회복일 겁니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문동은'이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로만 어림잡아도 8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원하는 사과와 배상은 쳇바퀴 돌며 뚜렷한 진전이 없습니다. 2018년 대법원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고 변호사와 시민단체들이 나서고 있지만 정부는 선을 그으며 거리를 두는 모양새입니다. 왜 그럴까요.

외교부는 일본 전범기업의 사과와 배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입니다. 일본 정부의 논리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고 피해자와 공감대를 넓히고 설득하는 데 치중하는 것 같지도 않아 보입니다. 국민정서상 납득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대신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지엽적인 사안으로 취급하며 성의를 다하지 않고 있다고 절규합니다. 정부가 협상을 강조하지만 일본을 상대로 대체 무엇을 얻어냈느냐고 묻습니다.

대법원 판결과 비엔나 협약의 간극

12일 국회 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유족회 소속 유족들이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사안의 핵심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놓고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이 충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발생한 강제동원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 합의에 따라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더라도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우리 대법원은 한일 청구권 협정이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아 피해자들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며 이는 청구권 협정의 합의 사항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은 당연히 대법원 판결을 이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 기업이 한국법에 따라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면 일본 입장에서는 최고재판소 판결을 거스르게 되고 한일 청구권 협정은 깨집니다. 일본 정부도, 일본 기업도 받아들일 수 없는 셈입니다.

이 같은 충돌과 갈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국가 간 협정을 둘러싼 해석이 다를 경우에 대비한 장치가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입니다. 국가들의 외교규범을 정한 이 협약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어느 당사국도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의 방법으로 그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선 안 된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27조

이 협약을 원용해 우리 대법원의 판결에 다툼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일본이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공격하는 이유인데요. 반면 일부 현직 판사들은 일반 국제법의 절대규범인 '국제 강행규범'이 배상책임을 인정한 △집단살해 △인도에 반한 범죄 △노예제 △고문 등에 △일본의 식민지배가 포함된다고 반박합니다.

우리 대법원 판결도 한국과 일본 외교당국이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시하지 않았다'고 문제 삼았죠. 과거 제국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구축된 세계질서에서 횡행한 식민지배의 불법성은 회색지대로 남겨 놓은 셈입니다.

이 같은 법리 논쟁을 넘어 외교의 시각으로 분석해볼까요. 문제는 식민지배의 잔혹성에도 불구하고, 그 불법성을 인정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식민 지배와 관련한 배상 문제는 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2차대전의 주범 독일도 식민지배와 관련해 보상이 아닌 배상을 한 사례는 없죠.

배상을 하더라도 '일괄 처리 협정'(lumpsum agreement·총액 지불 협정)을 따르는 편이고요. 식민지배 피해를 입은 우리 국민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그 불법성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배상 책임을 전범기업이 지도록 한 대법원 판례가 국제사회에서는 이례적인 경우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전범기업'이라 부르지만, 강제동원 가해기업 모두가 전범 판결을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법적으로는 지위가 다른 겁니다.

딜레마 ① 청구권 협정의 부작용…군불 때는 일본

좀더 구체적으로, 외교부는 왜 일본을 상대로 '사과와 배상'을 얻어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일단 비엔나 협약 틀에서 대법원 판결을 본다면, '일괄처리' 관행이 깨졌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입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머뭇대는 것일까요.

일부 단서를 알 수 있는 대목을 소개하려 합니다. 1955년 6월 외교부(당시 외무부) 정무국장이 작성한 '한일 간 재산청구권 협정에 관한 문서'를 들여다볼까요. 우리 정부가 작성한 당시 일본 측의 입장입니다.

"일본 견해: 대한민국이 미군정청으로부터 이양받은 권리는 관리권에 불과하며 'Equitable Owner'(법리상 소유자)로서의 청구권은 일본에게 있다."

1955년 외무부 정무국이 경무대(청와대의 전신)에 제출한 기안

한일 청구권 협정 과정에서 일본은 자국민들이 급하게 귀국하며 조선에 두고 온 재산에 대한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죠. 한국과 미국은 신탁통치로 일본의 자산이 미국을 거쳐 한국에 양도됐다는 입장이었지만, 일본은 자국법상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산케이신문 등 일본의 보수 매체가 "한국은 일본인이 한반도를 떠날 때 남긴 거액의 재산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이유입니다. 청구권 협정으로 묵혀둔 양국 간 재산권 다툼을 봉인해제할 수 있다는 위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입니다. 우리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다만, 만약 이 같은 주장이 현실화된다면 과거사 문제를 놓고 한국과 일본은 평행선을 넘어 서로를 적대시하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됩니다.

딜레마 ② 싸울 것인가, 타협할 것인가…한국의 운신의 폭 좁히는 일본

마드리드 이페마(IFEMA)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모습. 뉴시스

일각에서는 '죽창가'를 외칩니다. 일본과 싸우자는 것입니다. 인내심을 갖되 과거사 문제를 놓고 일본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이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아무래도 '타협'에 무게를 두고 있죠.

일단 일본이 한국 외교력에 끼칠 수 있는 악영향 때문입니다. 일본의 영향력은 문재인 정부 때도 확인됐죠. 트럼프 행정부 시절 북미협상을 맡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회고록에서 일본 정부가 어떻게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과 '단계적 비핵화 구상'을 반대했는지 상세히 밝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는 결렬로 끝나면서 그토록 원했던 종전선언과 단계적 비핵화 구상은 채택되지 않았죠.

조국 전 법무장관은 이를 두고 "일본의 방해 공작"이라고 비판했지만, 일본의 개입이 한국 외교가 가진 운신의 폭을 좁힌 건 사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신년기자회견에서 "강제동원 가해 기업의 자산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현금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배경을 유추해볼 만한 대목입니다.

또다른 불편한 진실은 우리 외교안보지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동맹국인 미국이 한일관계 개선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외교안보 인사들은 외교적 해법으로 타진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지지했습니다. 이들은 중국을 견제하고 동북아 정세를 안정적으로 꾸리기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한일관계 개선은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죠. 윤석열 정부의 외교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딜레마 ③ '배상' 문제에 삐딱한 국제사회 시선

지난 11일 키리바시 타라와섬 베소에 위치한 강제 징용 조선인 위령비. 이 위령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강제 징용돼 일본군 요새를 만들고 키리바시에서 숨진 조선인들을 위해 세워졌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한미·한미일의 틀에서 벗어나 국제 인권주의적 차원에서 대법원 판결을 이행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국제연합(UN)의 정신 또한 '인권주의'를 강조하고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궁금해집니다. 우리야 어릴 적부터 한일 간 비극적인 역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국제사회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나라는 어떻게 이처럼 껄끄러운 문제를 다뤘을까요.

최근 독일과 이탈리아의 배상 분쟁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탈리아 법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역으로 끌고 간 자국민을 상대로 독일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12년 국가 관할권 면제를 인정해 이 판결의 논리를 무참하게(?) 깨뜨렸습니다. 이탈리아 국내 판단과 국제사회의 결정이 정반대였던 겁니다.

이탈리아 내에서도 혼선을 빚었습니다. 의회는 ICJ 다수의견을 존중해 관련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독일이 배상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지요. 반면 헌법재판소는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이에 이탈리아 법원들은 재차 독일이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죠. 그러자 독일은 다시 이탈리아를 ICJ에 제소했습니다. 서로가 물고 물린 겁니다.

양국의 분쟁은 현재 어떤 상황일까요. 이탈리아 의회가 다시 나섰습니다. 그리고는 양국이 한발씩 물러납니다. 이탈리아는 특별법(decree-law)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집행되지 못하도록 임시조치를 했고, 독일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한 ICJ제소를 일단 취소하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탈리아와 독일 간의 외교적 협상은 현재진행중입니다만, 이탈리아 정부도 법적인 해법이 아닌 외교적 해법을 추구하는 모습입니다.

비슷한 사례가 최근에도 있었습니다. 2015년 우파 성향의 민족주의 정당인 '법과 정의당'(PiS)이 집권하면서 폴란드는 독일을 상대로 1,700조 원 규모의 2차대전 피해 배상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1953년 맺은 런던채무협약과 1970년 바르샤바 조약을 근거로 개인 청구권 문제가 일괄 해소됐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폴란드법과 정의당은 1953년 "나치의 잔학 행위에 대한 배상은 예외"라며 개인청구권이 인정된다고 반발했죠.

이를 지켜본 제3자인 유럽연합(EU)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공교롭게도 EU는 한발자국 물러나 있습니다. 그래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EU에는 형식상의 민주주의만 존재한다"고 날을 세우고 있죠. 최근 UN과 미국에 중재를 호소했습니다만,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입니다.

국제사회는 정의보다 강자의 논리…정부, 피해자 회복 못한 책임져야

참 냉혹합니다. 이처럼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강제동원 해법을 찾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차선책으로 제3자 대위변제가 언급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가해자는 뒷짐만 지고, 중간에 끼인 제3자가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바방식입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을 곧이곧대로 이행할 수 없는 게 안타깝지만 피해자들이 맞닥뜨린 현실이라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무엇을 위해 국가는 존재하는 것일까요. 국제사회에서 '힘이 곧 정의'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가치 중심의 외교'는 무슨 소용일까요.

정부는 피해자가 고령이고, 이들이 살아계실 때 어떻게든 이 문제를 매듭지어야 하기 때문에 성에 차지는 않지만 우회적 해법이라도 시급하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은 본질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차라리 "100년이고 1,000년이고 힘을 키워 '더 글로리'를 이루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 힘을 발휘하지 못해 차선을 택할 수밖에 없어 사죄드립니다"라고 고개 숙이는 게 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국민들은 궁금합니다. 군사력도 경제력도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그토록 정부가 홍보했는데, 논리가 복잡하지도 않은 강제동원 피해 배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말이죠. 이상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뉴스로 지켜보며 분통을 터뜨리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드라마 주인공 문동은처럼 부조리한 관행과 냉소적 시선을 깨기 위해 자신의 삶을 다한 집요한 노력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에게 설명하고 서로 공감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제강점기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외교권을 잃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된 무수히 많은 이 땅의 선조들의 존엄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제강점기 비극적인 나날을 보내며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졌던 이 땅의 수많은 문동은들에게 한일관계의 '더 글로리'는 아직 멀게만 느껴집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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