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대구 서문시장 활용법

입력
2023.04.03 16: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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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대구의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이 100주년을 맞은 1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대구=서재훈 기자

대구의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이 100주년을 맞은 1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대구=서재훈 기자


서문시장은 대구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통시장이다. 점포가 4,000개, 상인은 2만 명이 넘는다. 전신인 대구장은 조선시대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전국 3대 장터 중 하나였다. 지금의 위치(중구 달성로)에 자리 잡은 게 1922년. 한때 대구를 ‘섬유산업 메카’로 만드는 중추 역할을 했고, 지금은 주단∙포목은 물론 건어물∙해산물∙청과∙그릇 그리고 먹거리 좌판까지 없는 게 없다. 지난 1일 100주년을 맞았다.

□서문시장은 '대구 민심의 바로미터'이자 ‘보수의 성지’다. 역대 보수 대통령들은 지지층 결집을 위해 어김없이 이곳을 찾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직선제 개헌 직후인 1987년 방문해 “보통 사람 ‘노태우’를 불러달라”고 했다. 대구 출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불던 2004년, 대선 후보 시절인 2012년, 그리고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직이 위태롭던 2016년까지 위기 순간마다 찾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2007년 손수제비 가게를 운영하던 할머니에게 용돈 3만 원을 건네받고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해 화제가 됐다.

□그중에서도 서문시장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게 윤석열 대통령이다. 주말인 1일 김건희 여사와 함께 ‘서문시장 100주년 맞이 기념식’에 참석했다. 정치를 시작한 후 여섯 번째, 대선 후보 시절부터는 네 번째다. 김 여사 혼자 방문한 적도 있다. 윤 대통령은 방문 때마다 운집한 지지층을 향해 “대구는 정치적 고향”(대선 전날) “권력은 서문시장에서 나오는 것 같다”(당선인 신분) “서문시장 생각하면 힘이 난다”(1일) 등 러브콜을 보냈다.

□윤 대통령 ‘멘토’로 불렸던 신평 변호사가 ‘서문시장 바라기’ 행보에 쓴소리를 했다. 그는 SNS에 “과도하게 지지층을 향한 구애에 치중한다”며 “대구 서문시장을 네 번이나 방문한 것은 그 상징적인 예”라고 했다. 실제 올 들어 지역 방문의 절반이 영남권이다. 서문시장을 정치적으로 적극 활용하지만 공교롭게도 대구시는 전국 최초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변경했다. 이럴 거면 서문시장이 아니라 대형마트를 찾아야 한다는 푸념도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겠다.


이영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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