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변심은 무죄

입력
2023.04.07 16:00
22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페카 하비스토(왼쪽) 핀란드 외교장관이 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본부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가운데)이 지켜보는 가운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에게 나토 설립조약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공식 가입문서를 건네고 있다. 연합뉴스

페카 하비스토(왼쪽) 핀란드 외교장관이 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본부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가운데)이 지켜보는 가운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에게 나토 설립조약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공식 가입문서를 건네고 있다. 연합뉴스

11세기 압록강 유역과 함경도 일대에 여진족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겼다. 여진족이 세력을 키우자, 1108년 윤관은 별무반으로 정벌하고 동북9성을 쌓았다. 여진족은 ‘부모의 나라’로 영원히 섬기겠다고 맹세한 뒤, 9성을 돌려받았다. 그러나 강대해진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우고 위협하자(1126년), 고려는 20년도 지나지 않아 ‘자식의 나라’를 상국으로 받들었다.

□우리에게는 청량한 이미지의 핀란드. 이들의 현대사는 여진족보다 더 배반적이다. 1940년대 독일, 소련과 번갈아 협력 관계를 맺고 각각 소련과 독일에 총부리를 겨눴다. 1941년 독일이 파죽지세로 침공하자, 핀란드는 소련을 침략했다. 1940년 겨울전쟁에서 빼앗긴 영토 회복이 명분이었지만, 1944년 패퇴했다. 핀란드는 수세에 몰리자, 돌연 소련의 요구로 핀란드 북부에 주둔하던 독일군을 공격(라플란트 전쟁)했다. 이후 냉전 기간 핀란드는 ‘친소 중립국’을 자처했다.

□핀란드의 변신은 21세기에도 진행 중이다. 4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31번째 회원국이 됐다. 페카 하비스토 핀란드 외무장관은 벨기에 브뤼셸 나토 본부에서 정식 가입서를 군사동맹의 맹주인 미국 국무장관에게 전달했다. 핀란드는 나토 우산 아래 안전을 보장받게 됐고, 러시아에는 턱밑의 비수가 됐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리 안보와 국익에 대한 침해”라며 “러시아는 핀란드에서의 나토군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핀란드는 나치와의 협력 역사를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굳이 설명해야 하는 순간에는 “스탈린이 히틀러보다 훨씬 더 나빴기 때문이다”고 설명한다. 핀란드의 행보는 '안보는 최선이 아닌 최악을 피하는 선택'임을 보여준다. 그 때문일까. 국제여론도 핀란드를 배신의 나라로 욕하지 않는다. 핵을 가진 북한, 이해관계가 갈리는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우리의 선택은 핀란드보다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리에게 최악과 최선은 누구이고, 덜 나쁜 세력은 누구인지 구분하는데 핀란드의 변심은 참고할 만하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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