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빌어먹을 섬을 날려버려!"

입력
2023.04.1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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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헬리골란트 '빅뱅 작전'

나폴레옹전쟁과 1, 2차 대전 군사적 요충지였던 북해 헬리골란트섬의 1920년대 모습. 위키피디아

나폴레옹전쟁과 1, 2차 대전 군사적 요충지였던 북해 헬리골란트섬의 1920년대 모습. 위키피디아

1947년 4월 18일, 독일 주둔 영국 해군사령관 해롤드 워커의 명령이 떨어졌다. “저 빌어먹을 섬을 날려버려!” 본토에서 약 46㎞, 함부르크항에서 70여㎞ 떨어진 북해의 작은 섬 헬리골란트(Heligoland) 전체를 폭파하라는 이른바 '빅뱅 작전'. 그 작전을 위해 영국 해군은 약 8개월간 섬 곳곳에 건설된 나치 군함과 잠수함 접안기지, 벙커 등 군사시설에 약 6,700톤의 폭발물을 매설했다. 나치가 비축한 어뢰와 심도폭탄, 포탄에다 영국군의 재고 폭발물까지 더해졌다.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 해안 국경선에다 북해 너머 영국 본토까지 마주 보고 선 면적 1㎢ 남짓의 작은 섬 헬리골란트는 대대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영국은 저 섬을 거점 삼아 나폴레옹 군대의 스칸디나비아 진출을 막았고, 1890년 독일 카이저는 영국에 아프리카 잔지바르섬을 내어준 대가로 섬을 되찾은 뒤 1차대전 함부르크 군항의 전초기지로 활용했다. 1차대전 직후에도 영국은 섬에 구축된 군사시설 파괴 작전을 전개했지만 상징적인 조치에 그쳤고, 나치는 그 토대 위에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했다.

1945년 5월 섬을 점령한 영국은 52년 3월까지 점령군으로 주둔했다. 섬 전역에 은닉된 나치 군수물자의 수거-해체 즉 비무장화의 가장 신속하고도 완벽한 방법이 아예 섬 전체를 폭파하는 거였다. 당시 기준 사상 최대 규모의 재래식 폭파 작전에도, 섬은 지형 일부만 달라졌을 뿐 사라지지는 않았다. BBC 등을 통해 중계된 폭파 이벤트 직후 영국 언론은 ‘히틀러 생일(4.20)을 축하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대서특필했고, 한 독일 언론은 ‘붉은 절벽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썼다. 1952년 3월 섬은 독일에 반환됐고, 전시 내내 소개돼 있던 주민(현재 약 1,500명)도 폐허가 된 고향으로 복귀했다. 근년의 헬리골란트는 한 해 평균 36만 명가량이 들르는 관광지가 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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