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찔린 푸틴... 러시아 본토서 '우크라 지원' 반군에 공격당했다

입력
2023.05.23 18:51
수정
2023.05.24 11: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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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경지 벨고로드서 러 반군과 이틀간 교전
러시아 "우크라 짓" vs 우크라 "무관한 일"
우크라, '러 시선 분산' 노리고 성동격서?
"러의 크림반도 침공 순간 연상시켜" 분석

러시아 서부 지역 벨고로드주에서 22일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영상에서 헬기가 저공 비행하고(왼쪽 사진), 탱크가 벨고로드 내부로 진입하고 있다. 가디언 홈페이지 캡처

러시아 서부 지역 벨고로드주에서 22일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영상에서 헬기가 저공 비행하고(왼쪽 사진), 탱크가 벨고로드 내부로 진입하고 있다. 가디언 홈페이지 캡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허를 찔렸다.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러시아 서부 벨고로드주(州)에서 우크라이나와 연계된 러시아 반군단체의 공격을 받았다. 최대 격전지였던 우크라이나 바흐무트를 완전 점령했다며 들떠 있는 사이, 정작 본토에서 일격을 당한 셈이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우리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배후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번 공격의 주체임을 자처한 '러시아자유군단'은 러시아인들로 구성됐지만, 우크라이나에 본부를 둔 데다 우크라이나 당국에서 '지원군'으로 공식 인정받은 단체다. 러시아 시선을 바흐무트 등 주요 전선에서 돌리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성동격서'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틀간 교전' 벨고로드, 주민 대피 등 대혼돈

23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양국 접경지인 러시아 벨고로드주에서 전날부터 이어진 러시아군·보안대와 러시아자유군단 간 교전이 이틀 만에 종료됐다고 밝혔다. 러 국방부는 "테러리스트 70여명을 사살하고, 장갑차 4대, 트럭 5대를 파괴했다"며 "잔당들은 우크라이나 영토로 밀려났다"고 덧붙였다.

벨고로드주는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러시아군의 보급 및 지원 기지 역할을 해 왔던 곳이다. 한때 러시아가 점령했던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와 8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앞서 러시아자유군단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국경을 넘나들며 습격했고, (국경 바로 옆의) 벨고로드주 코진카 마을을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반(反)푸틴 단체 '러시아의용군'도 이번 작전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교전은 갈수록 격화했다. SNS 등에서 퍼진 영상들엔 장갑차가 국경 검문소를 무력 진입하는 장면, 헬리콥터가 저공 비행하며 조명탄을 떨어뜨리는 장면 등이 담겼다. 대피 과정에서 82세 여성이 숨지는 등 민간인 사상자도 발생했다.

러시아는 부랴부랴 대테러작전을 선포했다. 보안대는 신원 확인, 통신 감청 등을 통해 공격을 무력화하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이날 오전 뱌체슬라프 글라드코프 벨고로드 주지사는 "대테러작전이 완료되지 않았으니,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공지했다. 도시가 여전히 불안전하다는 의미였다.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테러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러시아 본토에 대한 공격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교전이 이틀째 이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갑차까지 동원된 이번 공격이 이번 전쟁 들어 러시아 본토에 대한 최대 규모의 공격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23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탱크를 탄 채 대기하고 있다. 바흐무트=AP 연합뉴스

23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탱크를 탄 채 대기하고 있다. 바흐무트=AP 연합뉴스


러 "바흐무트 패배 분풀이" 격앙... 우크라는 '선 긋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소행이라고 확신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번 파괴 공작은 우크라이나가 '바흐무트 전투 패배'에서 관심을 돌리려고 벌인 짓"이라고 말했다. 앞서 러시아는 지난 20일 바흐무트 완전 점령을 선언했다. 우크라이나는 공식 부인했으나, 사실상 함락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바흐무트 도심을 내준 뒤 가장자리를 에워싸는 '전략적 포위'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 만큼, 러시아군 집중력을 분산하기 위해 '지원군'을 통한 본토 공격에 나섰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첫 공격이 벌어진 벨고로드주 그라이보론 지역은 바흐무트와 380㎞가량 떨어져 있다.

우크라이나는 "관심 있게 지켜보는 중"이라면서도 관련성을 부인했다. 특히 '러시아인들에 의한 공격'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에 상처를 주려는 목적이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로이터통신에 보낸 서면 논평에서 "러시아가 전체 지역과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로선 서방 무기를 지원받으며 '러시아 본토 공격용으로는 쓰지 않겠다'고 약속한 터라, 설령 배후에 있다 해도 이를 공식화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군의 과거 전술을 우크라이나가 참고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공격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휘장을 달지 않은' 러시아군이 은밀하게 침공했던 사건을 연상시킨다"며 "푸틴 대통령은 당시 러시아군 개입을 부인했었다"고 전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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