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가 한국 영화의 미래인가

입력
2023.06.17 12: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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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도시3'는 15일까지 관객 826만 명을 모아 1,000만 관객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범죄도시3'는 15일까지 관객 826만 명을 모아 1,000만 관객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 영화 ‘범죄도시3’의 흥행 행보가 거침없다. 지난달 31일 개봉해 15일까지 826만 명을 모았다. 할리우드 화제작 ‘플래시’와 ‘엘리멘탈’이 개봉했음에도 16일 연속 일일 흥행순위 1위에 올랐다. 1,000만 관객 고지가 눈앞에 보이기도 한다. ‘범죄도시2’(2022)에 이어 꿈의 숫자에 도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시리즈 영화가 2년 연속 관객 1,000만 명을 각기 동원하는 두 번째 기록이 세워질 전망이다.

극장가가 불황이라고 한다. 한국 영화계는 어느 때보다 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범죄도시’ 시리즈만 놓고 보면 불황과 위기의 기색은 찾을 수 없다. ‘범죄도시3’의 극장 매출은 벌써 817억 원이다. 제작비(135억 원)의 6배가 넘는 돈을 이미 벌어들였다. 지난달 19.5%에 불과했던 한국 영화 점유율은 이달 들어 79.1%(15일 기준)로 껑충 뛰었다. 국내외 영화 모두 포함했을 때 ‘범죄도시3’의 이달 점유율이 78.2%다. 흥행독주라는 수식이 제격이다. 범인 검거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형사 마석도를 연기한 배우 마동석은 제작을 겸하기도 했다. 지난해 ‘범죄도시2’에 이어 돈방석에 다시 앉게 됐다. 영화계에서 “코로나19 이후 마동석만 보인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범죄도시3’는 상업영화로서의 목표 하나는 확실히 달성했다. 대중의 마음을 사 큰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1년 만에 속편을 선보이는 발 빠른 기획력을 높이 살 만하다(‘범죄도시4’는 이미 제작 중이고, 8편까지 시나리오 얼개가 짜여 있다고 한다). 올해 관객 100만 명이 넘은 한국 영화가 고작 2편(‘교섭’과 ‘드림’)에 불과해 침울해하던 영화계에 일단 활력을 불어넣어 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범죄도시3’는 의도치 않게 한국 영화의 주요 전환점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극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충성도와 인지도가 영화 흥행에서 주요 키워드가 됐다. 지난해 흥행 순위 10위에 든 영화 중 속편이 8편이었다. 한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가 각각 4편이었다. 관람료가 오르고 코로나19로 영화 보기 습관이 무뎌진 상황에서 관객들은 친숙하고 믿음 가는 영화만 소비한 셈이다. ‘범죄도시3’의 흥행 성공은 확실한 영화만 보고자 하는 관객 성향을 더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정 영화에 대한 관객 쏠림 현상은 꽤 오래 지속될 듯하다.

불행하게도 ‘범죄도시3’ 흥행에서 진전보다 퇴행의 징후를 읽는다. 마석도처럼 개성 강한 캐릭터를 내세운 영화들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액션이나 공포 등 장르성에 방점을 둔 영화들이 지나치게 많아질 전망이다. 특성 있는 캐릭터를 내세운 장르 영화는 속편 제작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200억 원 이상 쏟아붓는 대작은 급속히 줄어들 듯하다.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덜 들어간 ‘범죄도시3’에서 제작자들은 ‘가성비’를 발견했을 테니까.

민감한 사회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은 줄어들고, 휘발성 강한 소재를 단편적으로 그린 영화들이 대세를 이룰 듯하다. ‘시원하게 싹 쓸어버린다!’는 홍보문구를 내세운 ‘범죄도시3’ 같은 영화들 말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사회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상업영화들을 극장에서 만나기는 힘들어질 듯하다. 이런 예측들이 지나친 비관이 되길 바랄 뿐이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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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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