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 만들기', 지방소멸 막을 유일한 대안

입력
2023.07.03 04:30
25면

편집자주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최대 숙제였지만, 이해관계 집단의 대치와 일부의 기득권 유지 행태로 지연과 미봉을 반복했던 노동·연금·교육개혁. 지속가능한 대한민국과 미래세대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3대 개혁>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모색한다.

교육개혁: <7> 지역대학이 융성해야 선진국이다

우측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캘리포니아대학의 캠퍼스 10곳. 모든 캠퍼스에 운영 방식과 양질의 교육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좌측은 한국의 지방거점국립대 10곳을 서울대 수준으로 만들자는 구상.

우측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캘리포니아대학의 캠퍼스 10곳. 모든 캠퍼스에 운영 방식과 양질의 교육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좌측은 한국의 지방거점국립대 10곳을 서울대 수준으로 만들자는 구상.


지방소멸과 서울에 몰린 명문대
미국의 명문대는 모두 지방대
캘리포니아처럼 지방대 키워야

“백약이 무효입니다!” 지방시대를 열고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세종시 공무원들과 연구원들의 처절한 토로다. 나는 최근 세종시를 부쩍 많이 방문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교육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저자인 나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지방이 소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모든 인프라가 서울로 집중돼 있기 때문에 한국은 살인적인 병목사회가 됐다. 사회과학자들은 종합대학을 기준으로 엘리트 대학을 11곳으로 꼽는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이화여대가 모두 서울에 위치해 있다. 이는 강력한 대학 클러스터를 형성해 다양하고 두터운 인적 자본을 제공하기 때문에 대기업들도 서울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대학 입학과 취업을 위해 지방 청년들이 해마다 서울로 유입되고 지방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 산·학·관 연계를 지난 수십 년 동안 추진해 왔다. 서울과 같은 지역은 ‘강력한 산·학·관 연계’, 다른 지방들은 ‘허약한 산·학·관 연계’다. 전자는 서울 엘리트 대학-대기업-중앙정부의 협력으로, 후자는 지방대-중소기업-지방정부의 협력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지역혁신체제(RIS)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힘없는 3자가 힘을 합쳤기 때문이다.

반면 세계 최강국 미국의 모든 대학은 ‘지방대’다. 미국 전역에는 서울대 수준의 대학이 60여 개 있다. 각 지역에 세계적 수준의 대학들이 고루 퍼져 있다. 미국 대학들은 레이더(MIT), 인터넷(UCLA, 스탠퍼드대), 반도체 핵심기술(칼텍), MRI(뉴욕주립대), mRNA 백신(펜실베이니아대) 등 현대 사회를 바꾼 결정적인 기술들을 개발했다. 미국 정부와 기업은 연구 중심대학들을 대대적으로 지원했고 강력한 산·학·관 연계가 전국적으로 형성됐다.

미국에서 가장 탁월한 대학 시스템은 단연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다. 캘리포니아 주 전역에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10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대학들은 반도체 혁명과 정보기술(IT) 혁명, 즉 3차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를 모델로 지방의 거점국립대(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전북대, 충남대, 충북대, 강원대, 경상대, 제주대)를 서울대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으로 키우자는 방안이다.

인구 4,000만 명의 캘리포니아는 왜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10개나 만들었을까? 지역균형발전 때문이다. 이 체제가 추진되기 이전에는 캘리포니아의 서울대, 곧 캘리포니아 대학은 버클리 단 한 군데밖에 없었다. 이후 LA 정치인들과 주민들의 거센 요구로 두 번째 캘리포니아 대학인 UCLA가 20세기 초에 만들어졌다.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 10개가 주 전역에 골고루 퍼져 있다. 캘리포니아의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의 약 2배지만, 캘리포니아 10개 연구 중심 대학 예산은 2020년 기준 약 53조 원으로 서울대를 포함한 거점 국립대학 10개 대학 예산의 9배 정도다. 서울대 수준의 대학 10개를 만드는 데 연 3조~4조 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한데, 이는 한국의 경제 규모로 충분히 가능하다.

캘리포니아의 대학들은 강력한 산·학·관 연계를 형성하며 지역 경제를 선도해 왔다. 스탠퍼드대와 캘리포니아대-버클리는 농촌 지역이었던 산타클라라 지역을 실리콘밸리로 성장시켰다. 무선통신과 시스템 반도체의 세계적 강자인 퀄컴은 캘리포니아대학-샌디에이고 공대 교수였던 어윈 제이콥스가 세웠고, 샌디에이고는 현재 세계 무선통신의 메카가 되었다. 또 다른 세계적인 시스템 반도체 회사인 브로드컴은 UCLA 공대 교수였던 헨리 사무엘리가 세웠다. 캘리포니아대학-데이비스는 와인제조학의 세계적인 중심으로 나파 밸리를 세계적인 와인 생산지로 만들었다.

대학은 학벌만을 주는 기관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과 경제, 사회를 만드는 창조권력이다. 창조권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지역 경제를 살리고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결단할 때가 왔다.

글 싣는 순서-교육개혁

<1> 한국 교육의 근본문제 (조벽)
<2> 디지털문명에 걸맞은 교육 (염재호)
<3> 시험이 바뀌면 한국도 바뀐다 (이혜정)
<4> 교육 망치는 교육감 선거 (박융수)
<5> 대학입시, 어떻게 해야 하나 (배상훈)
<6> 대학 총장 직선제는 답이 아니다 (전호환)
<7> 지역대학이 융성해야 선진국이다 (김종영)
<8> 글로벌 스탠더드- 9월 학기제 (김도연)
<9> 노동ㆍ연금개혁 그리고 교육개혁 (김용학)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국가교육위원회 특별위원회 위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