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매운 압박에…신라면 13년 만에 "값 내려요"

입력
2023.06.27 19:00
수정
2023.06.28 08:2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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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분회사 밀가루 출하 가격 내리자
농심·삼양식품 라면값 인하 결정
오뚜기·팔도 등도 "인하 검토 중"

농심이 다음 달부터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인하한다고 27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신라면의 모습. 연합뉴스

농심이 다음 달부터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인하한다고 27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신라면의 모습. 연합뉴스


가격을 인하해 달라는 정부의 압박에 라면업체들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 업계 1위 농심이 대표 제품 신라면과 새우깡 값을 내리기로 하면서 삼양식품 등 다른 업체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라면값이 내려간 것은 2010년 이후 13년 만이다. 밀가루 가격 하락에 따라 라면값이 조정되면서 제빵·제과 등 밀가루를 사용하는 다른 식품업체들도 가격 인하의 부담을 안게 됐다.



농심·삼양식품 라면값 내린다…오뚜기는?

농심이 7월 1일부로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인하한다고 27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신라면과 새우깡의 모습. 연합뉴스

농심이 7월 1일부로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인하한다고 27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신라면과 새우깡의 모습. 연합뉴스


농심은 다음 달 1일부터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각각 4.5%, 6.9% 인하한다고 27일 밝혔다. 소매점 기준 1,000원짜리 신라면 한 봉지는 50원, 1,500원짜리 새우깡은 100원 가격이 내려간다.

농심의 결정에는 국내 제분회사가 다음 달부터 밀가루 출하가를 내리기로 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다음 달부터 농심이 제분회사에서 공급받는 밀가루 가격이 5% 싸지면서 80억 원을 아낄 것으로 보인다. 농심은 이번 가격 인하로 소비자들이 연간 200억 원 이상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2개 제품만 가격을 인하하기로 한 이유는 소비자가 물가 하락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농심 관계자는 "비용 절감액을 여러 제품으로 분산해서 적용했을 때 소비자가 느끼는 할인 효과는 한 제품당 10원도 안 된다"며 "라면과 제과 중 가장 잘 팔리는 제품에 집중해 인하 효과를 키우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라면 회사들도 바빠졌다. 삼양식품은 다음 달부터 삼양라면, 짜짜로니, 맛있는라면 등 12개 대표 제품의 가격을 평균 4.7% 내리기로 했다. 삼양라면(5개입)은 할인점 판매가 기준 3,840원에서 3,680원으로, 짜짜로니(4개입)는 3,600원에서 3,430원으로 저렴해진다.

대표 제품인 불닭볶음면은 빠졌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불닭볶음면은 해외 매출 비중이 더 큰 품목이라 국내와 해외 가격을 맞춰서 운영한다"며 "국내 가격 인하 시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커 쉽게 가격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양식품의 해외 수출 비중은 올 1분기 기준 64%이며 해외 매출에서 불닭볶음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오뚜기와 팔도는 "라면 주요 제품의 가격 인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풀무원은 "지난해 다른 업체들이 줄인상할 때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며 가격 인하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라면값 인하에…제빵·제과업계도 긴장 모드

'서민 식품'으로 꼽히는 라면은 가격 인상에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제품군 중 하나다. 게티이미지뱅크

'서민 식품'으로 꼽히는 라면은 가격 인상에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제품군 중 하나다. 게티이미지뱅크


라면업체들이 줄줄이 가격을 내리는 것은 제분업체가 최근 정부 요청에 따라 밀가루 출하가를 낮추기로 하면서 버틸 명분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1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라면값을 낮춰 달라 당부하면서 가격 인하의 압박을 느껴왔다.

국제 밀 선물가격은 시카고 선물거래소 기준 지난해 5월 톤당 419달러까지 올랐다가 점점 떨어져 이달 234달러 수준으로 내렸다. 그러나 라면과 제분 등 관련 업계는 밀 가격이 여전히 평년(201달러)보다 비싸고 국제 밀 가격 등락이 수입 가격에 반영될 때까지 3~9개월 시차가 생긴다며 여전히 원가가 부담된다고 주장했다.

제빵·제과업체들은 당장은 가격 인하 계획이 없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여론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 제빵업계 관계자는 "제품 가격은 원·부자잿값뿐 아니라 가공비, 물류비 등 여러 비용을 고려해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며 "원재료 한 품목의 값이 내려갔다고 제품 가격에 곧바로 반영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제빵·제과업체들도 2010년 밀가루 가격 하락에 따라 제품 가격을 내린 적이 있다.

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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