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대화력을 되찾기 위해서

입력
2023.08.17 19:00
25면

편집자주

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신간 '약속의 땅'이 2020년 11월 17일 워싱턴 DC의 한 서점에 진열되어 있다. AFP 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신간 '약속의 땅'이 2020년 11월 17일 워싱턴 DC의 한 서점에 진열되어 있다. AFP 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회고록 '약속의 땅'을 읽고 있다. 오바마는 자신의 이름에 담긴 흑인의 정체성과 미국의 오랜 역사, 조부모 대부터 자신까지 이어지는 가족사에 담겨 있는 평범한 개인의 삶을 교차하며 미국을 더 포용적 나라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정치의 의미는 권력과 지위보다 공동체와 연결에 있다"는 믿음은 회고록 전체에서 반복된다.

모든 문제가 정쟁으로 수렴되는 한국의 현실이 자꾸만 오버랩됐다. 최근 한국 정치는 다양한 문제로 시끄러웠다. 잼버리 사태나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 양평 고속도로 논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국회의원의 가상자산 보유 문제 등 다양한 갈등 상황에서 정치가 보여 준 일관된 모습이 있다면 남 탓이다. 문제의 원인이 현 정권인지, 전 정권인지 탓하며 반성과 대안을 찾는 일을 요원하게 만들었고 상대 정당의 발언을 공격하며 소란을 재생산하는 데 급급했다.

갈등만 되풀이하는 정치에 대한 피로감, 유권자가 느끼는 무력감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양당의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만 봐도 자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정당이 이 문제를 돌파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지금의 대치 구도가 정치에 더 유리하기 때문일 거다. 어떻게든 상대보다 많은 표를 얻으면 당선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약점을 찾는 일이 혁신을 두고 겨루는 일보다 훨씬 쉽다. 유권자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게 하는 건 정치인이 기대하는 가장 좋은 응답일 것이다. 요구 수준이 낮을수록 지금의 쉬운 수를 반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우리가 정치의 말을 더 이상 받아 주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을까? 우선 모든 정치인이 문제의 원인으로 상대 정당을 지목하는 걸 거부하면 어떨까. 그리고 더 나은 답변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거다. 우리가 진짜로 들어야 할 답변은 이런 거다. 어떻게 당장의 불안을 해소할 것인가. 이 문제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안심시키는 말을 환영하자. 하지만 여기서 머물지 말고 원인을 물어보자. 대부분의 문제에는 다양한 원인이 얽혀 있다. 어떤 이유로 해결이 더 어려울 수 있는지 우리를 더 골치 아프게 만들 말을 환영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법을 찾을 건지 질문하자.

이런 질문을 거듭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하나의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정치란 무엇인가. 어쩌면 이 본질에 대해 묻는 일이 지금 가장 나은 정치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작업을 위정자가 해낼 수 없다면 시민이 그렇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유권자도 갈등 구도를 심화하고 있다. 양 극단의 의견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소셜 채널에서 화제성 높은 정치를 소비하며 나와 다른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우리는 지금 도둑맞은 대화력, 대화력을 통한 포용력을 다시 찾아와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전쟁 같은 정치의 결과로 우리는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노인은 청년을, 청년은 노인을, 보수는 진보를, 진보는 보수를 쉽게 혐오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대신 정쟁하는 정치에서 무력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질문이 펼쳐진 정치는 지금보다 더 평화로울까. 단언컨대 그렇지 않을 거다. 우리는 더 많은 미묘한 차이를 확인하고 피곤한 대화를 이어가야 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정치가 우리를 피로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피곤하게 만드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두는 건 정치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이다. 지금의 정치가 가장 쉬운 선택을 포기하게 만드는 방법은 무관심이라고 하는 가장 좋은 답을 거부하는 데서 시작한다.


곽민해 뉴웨이즈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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