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로 옮기는 스타트업들

입력
2023.10.14 05:00
수정
2023.10.14 09:5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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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 위치한 그랩 본사. 싱가포르=최연진 기자

싱가포르에 위치한 그랩 본사. 싱가포르=최연진 기자

싱가포르의 3미디어 클로스 거리를 가다 보면 커다란 로고가 붙은 건물이 있다. '동남아시아의 우버'로 통하는 차량호출 서비스업체 그랩의 본사다. 그랩은 말레이시아 기업이지만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겼다. 중국 로봇 스타트업 푸리에 인텔리젠스도 얼마 전 중국 상하이 본사를 싱가포르의 마리나원 지역으로 이전했다. 중국 패션업체 쉬인 역시 중국 난징 본사를, 짧은 동영상 '틱톡'으로 유명한 중국 바이트댄스는 해외사업 본사를 각각 싱가포르로 옮겼다.

혁신을 주도하는 신생기업(스타트업)들이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긴 이유는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싱가포르의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19년 중국 정부가 홍콩 지배를 강화하며 촉발된 홍콩 사태 이후 글로벌 기업과 투자은행, 벤처투자사 등이 아시아 본부를 속속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옮기면서 싱가포르는 아시아 시장을 향한 글로벌 기업들의 관문이자 스타트업 투자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이를 뒤집으면 스타트업에는 싱가포르가 세계로 나아가는 관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싱가포르의 경제정책 연구소 스타트업 게놈 발표에 따르면, 각각 200개 이상의 벤처투자사와 육성업체가 싱가포르에서 활동하고 있다. 유명 제약사 존슨앤존슨, 독일 지멘스, 영국 혁신의 상징 다이슨, 소니뮤직 등 대기업들까지 싱가포르에 글로벌 본사를 두거나 스타트업 투자조직을 설치하고 있다.

덕분에 스타트업 게놈이 발표한 전 세계 스타트업 투자 경쟁력 순위에서 싱가포르는 지난해 18위에서 올해 8위로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서울은 10위에서 12위로 떨어지며 추월당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갈등도 한몫했다. 중국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들이 미국의 무역 제재를 피하기 위해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배경이 전부는 아니다. 싱가포르는 정부가 나서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적극 지원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싱가포르 기업청의 '스타트업 SG 이쿼티' 제도다. 이 제도는 벤처투자사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그보다 많은 돈을 싱가포르 정부가 해당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또 테크패스라는 일종의 기술비자 제도를 이용해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 창업가나 개발자가 가족까지 데려와 싱가포르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렇다 보니 싱가포르 진출을 고려하는 국내 스타트업들도 늘고 있다. 지난 11일 스타트업 육성업체 머스트액셀러레이터가 국내 스타트업의 세계 진출을 돕기 위해 싱가포르 사이언스파크에서 개최한 '머스트 커넥트' 행사에서도 국내 스타트업들이 다국적 기업들 및 벤처투자사들과 1대 1 맞춤형 만남을 갖느라 분주했다. 여기에 국내 벤처투자사들까지 펀드에 투자할 투자자 모집과 투자 대상 스타트업을 찾기 위해 싱가포르로 향하고 있다.

물론 그늘도 있다. 기업들이 몰리며 싱가포르의 사무실 임대료 등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싱가포르를 떠나고 있다.

이 같은 싱가포르의 변화를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래 성장 동력이 될 만한 스타트업들이 많이 찾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장차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사례를 교훈 삼아 필요한 제도가 있으면 도입하고 고쳐야 할 부분은 지금이라도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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