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 신문의 아쉬운 '위안부 기사' 오보 인정

아사히 신문의 아쉬운 '위안부 기사' 오보 인정

입력
2023.11.25 04:30
수정
2023.11.25 15:46
12면

[같은 일본, 다른 일본] <101> 팩트의 총합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아사히 신문의 돌연한 위안부 기사 오보 인정은 일본 우파의 역사수정주의 인식이 본격화하는 계기를 초래한 아쉬운 사례이다. 일러스트 김일영

아사히 신문의 돌연한 위안부 기사 오보 인정은 일본 우파의 역사수정주의 인식이 본격화하는 계기를 초래한 아쉬운 사례이다. 일러스트 김일영

◇권력 비판에 소극적이지만 신뢰도 높은 일본 언론

종종 “일본의 언론은 왜 권력 비판에 소극적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실제로 일본에 살 때에 정부나 권력을 대한 언론의 비판 정신이 ‘무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에서도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은 그래도 ‘할 말은 한다’는 인상이다. 서슬 퍼런 군사 정권과 언론 탄압을 견딘 역사가 있는 만큼, 뚝심도 있다. 그에 비해 일본의 언론은 정부나 대기업에 날 선 비판을 가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시민의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높다. 예를 들어, 일본 총무성의 정보통신백서(2021년 판)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사태 당시 일본인이 신뢰했던 정보 미디어는 신문(61.2%), TV(53.8%), 라디오 (50.9%)로, 소위 ‘레거시 미디어’가 1, 2, 3등을 차지했다. 일본의 언론은 비판 정신이 약하지만 여전히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일본 언론의 현주소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사건이 있다. 9년 전 아사히 신문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오보를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한 일이다. 사안이 복잡해서인지 한국에서는 이 일이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일본의 언론 지평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사건이고 한국과도 관련되어 있는 만큼, 조금 자세하게 소개해 보겠다.

◇ 아사히 신문의 ‘대국민 사과’ 사태

2014년 아사히 신문이 놀라운 입장 발표를 했다. 소위 '위안부 문제'를 보도한 과거 기사 16건이 잘못된 팩트에 근거해서 작성된 오보였으며, 그에 따라 그 기사들을 철회하겠다는 발표였다. 기사들이 게재된 시점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체적으로는 1982년 9월 2일 자 "제주도에서 200명의 젊은 조선인 여성을 '사냥했다'"는 기사, 1983년 10월 19일, 11월10일, 12월 24일 자로 게재된 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특집 기획 기사, 1991년 5월 22일 자 "여성들의 태평양 전쟁, 종군위안부 - 목검을 휘두르며 무리해서 동원", 10월 10일 자 "여성들의 태평양 전쟁, 종군위안부 – 엄마에게서 젖먹이로부터 떼어냈다" 기사 등이었다. 즉 1980년부터 1994년에 걸쳐, 태평양 전쟁 당시 한반도의 젊은 여성들이 군인들의 성노예, 소위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다고 고발한 내용의 기사 10여 건을 철회한 것이었다.

언론사가 기사를 철회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드문 일이지만, 수십 년이 지난 과거 기사를 갑자기 끄집어내어 오보라는 입장을 밝힌 경위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특히, 그 즈음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입장이 뚜렷하게 변하던 참이었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포괄적으로 인정했던 1993년 고노 담화를 ‘국익에 맞게’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본 정가에 커지고 있었다. 그런 시점에 유력 언론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고발 기사의 문제를 자백하고 나선 만큼, 웬만한 특종보다도 사회적인 파문이 컸다. 우파 언론들은 곧바로 아사히 신문이 오보로 “국익을 훼손했다”고 공격했고, 지식인들은 아사히 신문이 머리 굽혀 사과하지 않는 태도를 비난했다. 몇 달이 지난 뒤 아사히 신문은 대국민 사과를 했고, 사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리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파급 효과는 그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사죄, 배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지지했던, 여러 지역의 의회가 그 입장을 잇따라 철회하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 사회에서 과거의 전쟁 범죄를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현저하게 약해졌다. 개인적으로 이 사건은 우파의 역사 수정주의를 일본 사회의 주류 담론으로 끌어올린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사히 신문은 왜 위안부 기사를 오보라고 판단했을까? ‘제3자 위원회’까지 꾸려서 조사하고 검증한 결과이지만, 이 기사들이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철회를 선언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날조였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중요한 취재원이었던 요시다 세이지(吉田清治, 1913~2000)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려는 취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요시다는 자신이 태평양 전쟁 당시 조선인을 강제 연행하는 실무 책임자였다고 주장하며 “제주도에서 200명의 젊은 여성들을 폭력적으로 위안부로 동원했다”는 내용의 책을 낸 인물이다. 1990년대에 한국을 방문해서 “내가 저지른 범죄를 사죄하고 싶다”며 고개를 숙여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이른바 ‘요시다 증언’이라고 불리는 그의 주장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 특히, 우파를 대변하는 산케이신문은 제주도를 방문, 조사한 역사학자들의 입을 빌려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팩트가 확보되지 않으므로 요시다는 거짓말쟁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그때까지 아사히 신문은 시민 사회의 진보적인 목소리를 대변하는 유력 언론이었다. 아사히 신문이 위안부 기사를 오보라고 인정하고 철회한 것은, 일본 사회에서 마치 좌파가 우파에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 팩트의 총합이 진실은 아니다

사실 요시다 증언에는 과장과 윤색이 포함되었다고 볼 만한 정황이 많다. ‘위안부 사냥’ 등 원색적인 표현으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인터뷰 시기에 따라 증언 내용도 차이가 있다. 노동을 위해 징발된 ‘여성 정신대’와 전시 성노예를 뜻하는 ‘위안부’를 혼동하는 등 팩트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는 문제 시 될 만한 증언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의 주장 전체가 허위, 날조라는 주장은 본질적이지 않다. 특히 요시다 증언이 이루어진 1980~1990년대는 전쟁이 끝난 뒤 이미 반세기가 지나 있었다. 위안부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정부의 관련 기록은 대부분 미공개 상태였다. 질적인 자료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연구자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그런 상황에서는 왜곡이나 과장의 가능성이 있어도 당사자의 진술과 기억을 더듬어서 당시의 맥락을 재구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요시다 증언의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후 강제 연행되었다는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객관적인 기록이 없다고, 이들의 기억과 경험을 모두 거짓으로 치부할 것인가? 팩트의 총합이 진실은 아닌 것이다.

아사히 신문의 기사 철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공격당할 것이 뻔한데도 오보를 인정하는 언론 윤리의 실천인 양 보이기도 하지만, 팩트를 빌미로 공격을 가하는 정치 세력에 굴복한 겁쟁이 언론의 행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시다 증언의 진위 여부를 따지다가, 결과적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전쟁 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협소하게 팩트에만 집중하다가, 진실을 파헤치는 언론의 소명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오로지 팩트만을 중시하는 언론관이 일본 언론 전반적인 친정권 성향,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신뢰도 등과도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도 크다. 언론 보도에서 팩트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겠지만, 아사히 신문의 위안부 보도 철회 사건은 오로지 팩트만을 중시하는 취재와 기사 작성의 위험성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제를 굳이 들고 온 이유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 공영 방송이 불공정 편파 보도의 과거 사례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불공정 편파 보도를 뿌리 뽑자는 명분에 반대할 리 있겠느냐마는, 과거 위안부 기사를 오보라며 사과한 아사히 신문과 겹쳐 보이는 측면이 있었다. 행여나 한국 언론도 팩트라는 감옥에 갇혀서 권력 비판이라는 언론 본연의 임무에서 멀어지지 않을지 걱정된다. 아사히 신문의 선례가 새삼 뼈아프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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