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치 철수와 정치권의 뻔뻔함

입력
2023.12.19 19:00
26면

편집자주

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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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루한 사람이다.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선호하고 소위 '대안언론'으로 불리는 매체보다 신문 같은 전통적 매체를 더 신뢰한다. 인터넷 방송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지 않았다. 인터넷 방송은 선정성 혹은 폭력성이나 가학성이 지배하는 공간이라고만 여겼다. 가끔 BJ(인터넷 방송인)와 팬 사이에서 '로맨스 스캠(이성적 관심을 미끼로 한 사기)' 사건이 불거질 때면 양쪽 다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인터넷 방송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꿔준 건 트위치였다.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시작한 트위치는 비교적 강도 높은 규제로 선정적 행위나 혐오 발언을 근절해 왔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말년(침착맨)·전석재(슈카월드)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인물들도 이 플랫폼을 통해 수많은 '트수(트위치 이용자를 일컫는 말)'들과 소통해 왔다. 미국에서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 등이 트위치에서 활동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트위치가 내년 2월을 끝으로 한국에서 철수한다. "한국의 망 사용료 부담이 다른 나라보다 10배나 높다"(댄 클랜시 트위치 CEO)는 게 주된 이유다. 트위치로서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은 세계 네 번째로 트위치 접속량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네이버·아프리카TV 등 동종업계 플랫폼들은 트위치가 떠난 뒤 유입될 이용자들로 기대가 큰 모양이지만 '트수'들로서는 오랫동안 스트리머와 유대관계를 쌓으며 문화 코드를 형성해 온 공간이 사라지는 게 아쉬울 수밖에 없다.

통신사들은 망 사용료 도입 논란이 일 때마다 꼭 '미국 플랫폼 공룡의 무임승차'를 거론하며 애국주의를 조장한다. 그렇게 나라를 사랑하는 기업들이 왜 자국 소비자들이 부담하고 있는 터무니없이 높은 통신비는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며 느끼는 즐거움이 꼭 그들이 미국 기업이어서 그런 게 아니듯, 망 사용료 부담에 따른 트위치 철수 문제도 기업의 국적이 아닌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편익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일이다.

사실 망 사용료의 중복 부담(소비자와 콘텐츠사업자) 논란이라든가 비싼 요금만 내고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는 받지 못했던 5G 서비스에 대한 비판은 이미 많은 데서 제기된 터라 굳이 말하지 않겠다. 지적하고 싶은 건 정치권의 대응이다. 지난해 트위치가 망 사용료 비용 경감을 위해 화질 제한 조치를 단행하자 2030세대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당시 소관 상임위 위원장이던 정청래 의원이 "망 사용료 문제 있다"며 이 문제를 다룰 것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슈에 잠깐 편승했을 뿐 어떤 노력을 보여주진 않았다. 만일 그들이 국무위원 탄핵에 쏟은 열정의 10분의 1만이라도 여기에 들였다면 이 문제는 진즉 해결됐을 것이다.

정치권은 당 상황이 어려워질 때마다 민생 카드를 꺼낸다. 그런데 여론은 뜨뜻미지근하기만 하다. 말이나 할 줄 알았지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진정성을 보여주진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양치기 소년을 믿지 않는 마을 사람들처럼, 정치인의 "민생"을 믿지 않는 유권자들의 냉소 역시 반복된 학습효과의 산물이다. 양치기 소년처럼 모든 양이 잡아먹힌 뒤에 후회해 봤자 늦는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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