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담화, 일본에 기회일까?

입력
2024.02.20 04:30
27면

일본

편집자주

우리가 사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알쓸신잡’ 정보를 각 대륙 전문가들이 전달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지난 15일, 북한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의 담화가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그는 담화에서 "일본이 우리의 정당방위권에 대하여 부당하게 걸고 드는 악습을 털어버리고 이미 해결된 납치 문제를 양국관계 전망의 장애물로만 놓지 않는다면 두 나라가 가까워지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면서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본 정부는 이에 “유의(留意)하고 있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대응하고 있다. '유의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에 담아 둔다'는 것이니 김여정 담화의 의도를 마음에 새겨 두면서 여러 가능성을 모색해 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국내에서는 한미일 3국 공조에서 약한 고리인 일본을 건드려 균열을 내려는 이간책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고 일본 언론들 역시 유사한 해석을 제시하며 한국이나 미국의 반응도 기민하게 보도하고 있다.

북일 접촉설은 지난해 이미 보도된 바 있다. 작년 3·5월 두 차례 동남아시아에서 비밀리에 접촉했으나, 최대 난제인 납치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로 진전을 이룰 수 없었다는 후일담도 들려왔다. 이번 김여정 담화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읽혀야 하는 부분은 일본 수상의 평양 방문이 아니라, 납치 문제다. 김여정은 “이미 해결되었으니 장애물로 삼지 말라”고 종용하고 있고, 일본 정부는 이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니 여전히 양측 입장에는 큰 괴리가 있다.

일본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납치 피해자는 총 17명이다. 한편 북한은 총 13명인데,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첫 방북 당시 5명이 귀환했고, 나머지 8명은 사망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납치 피해자는 일본 정치·외교사에 있어 원폭 피해자에 준하는 수준의 무게감을 갖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이 문제에 집착하는 것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지지율을 일거에 회복할 뿐 아니라 일본 외교사에 큰 족적을 남길 것이라는 포부 때문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 문제를 언급하면 북일 정상회담은 성사될 수 없다는 것이 북한 측 입장이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일본 내 반응도 꽤나 냉소적이다. 북한이 일본을 얼마나 우습게 보기에 이런 담화가 나올 수 있냐는 반응도 있다. 우익 인사 중에는 일본이 평화헌법하에 교전권을 포기한 비정상적 국가이기 때문에 북한 같은 나라가 이런 언행을 서슴지 않는 것이라 개탄하는 이도 있다. 기시다 총리가 북한의 꾐에 넘어갈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지통신(時事通信)이 지난 9~12일 동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전월대비 1.7%포인트 하락, 취임 이후 최저인 16.9%를 기록했다. 김여정 담화를 “유의”하겠다는 기시다 내각의 태도는 어쩌면 이 수치를 더 떨어뜨릴지도 모른다.



임은정 국립공주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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