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의 ‘성폭행 의혹’, 사실이었다… “이스라엘도 ‘팔 인권 유린’ 자행”

입력
2024.03.05 19: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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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하마스 기습 당시 성폭행 증거 확인"
"이스라엘군 역시 성 고문·잔혹 행위" 증언
"테러범 450명" vs "고문·학대"... 난타전도

지난해 10월 12일 이스라엘의 한 군인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당한 남부 레임 키부츠의 음악 축제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레임=AFP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2일 이스라엘의 한 군인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당한 남부 레임 키부츠의 음악 축제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레임=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본토를 기습 공격할 당시, 민간인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스라엘 주장에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유엔이 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스라엘이 줄기차게 제기해 온 하마스의 성폭행 의혹을 국제기구가 공식 확인한 건 처음이다. 반대로 이스라엘군 역시 성 고문 등을 자행했다는 구체적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가자지구 전쟁이 5개월을 코앞에 둔 가운데, 양측의 잔혹 행위를 폭로하는 상호 난타전마저 가열되는 모습이다.

유엔 특사팀 "하마스, 최소 3곳서 성폭행 여러 건"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분쟁 지역 내 성폭력 문제를 전담 조사하는 프라밀라 패튼 유엔 특사팀은 이날 24쪽 분량 보고서를 공개했다. 패튼 특사는 "(지난해) 10월 7일 공격 당시 가자지구 외곽 노바 뮤직페스티벌 현장과 인근 232번 도로, 이스라엘 남부 레임 키부츠(집단농장) 등 최소 3곳에서 성폭행·집단 성폭력이 발생했다고 믿을 만한 근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공습 지역에서 허리 아래로 완전히 옷이 벗겨진 여성 시신 여러 구가 발견됐고, 이들은 손을 결박당한 채 총탄을 맞은 상태였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패튼 특사는 "생식기 절단, 성적 고문,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며 굴욕적인 대우 등 일부 형태의 성폭력을 암시하는 정황을 수집했다"고 말했다. 또 하마스에 인질로 잡혔다가 풀려난 여성과 아이들을 조사한 결과, 감금 기간 동안 갖가지 성폭행이 자행된 것은 물론 아직 붙잡혀 있는 인질들도 학대에 노출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러한 결론은 올해 1월 29일~2월 14일 이스라엘과 서안지구를 특사팀이 직접 방문해 진행한 조사를 거쳐 나왔다. 생존자와 목격자, 석방된 인질, 의료진 등 34명과 면담했으며, 관련 기관과 33차례 회의도 열었다고 한다. 다만 특사팀은 "성폭력의 전반적인 규모와 범위 등을 규명하기 위해선 좀 더 본격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지난해 10월 10일 공개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현장 폐쇄회로(CC)TV 및 휴대폰 영상 화면. 이스라엘 남부 사막지대에서 열린 음악 축체 노바 페스티벌(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과 크파르 아자, 스데로트, 비에레 키부츠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한 하마스의 잔혹한 총격 순간을 보여 주고 있다. NYT 홈페이지 캡처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지난해 10월 10일 공개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현장 폐쇄회로(CC)TV 및 휴대폰 영상 화면. 이스라엘 남부 사막지대에서 열린 음악 축체 노바 페스티벌(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과 크파르 아자, 스데로트, 비에레 키부츠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한 하마스의 잔혹한 총격 순간을 보여 주고 있다. NYT 홈페이지 캡처


이스라엘군의 '성 학대' 의혹도 제기

성폭력 의혹에 휩싸인 건 이스라엘군도 마찬가지다. 전날 NYT가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의 보고서 초안을 토대로 "남성 군인이 팔레스타인 여성 수감자를 나체 상태로 수색하는 등 성적 학대가 있었다"고 보도한 데 이어, 특사팀도 이스라엘군의 성범죄 관련 정보를 입수했다고 이날 밝혔다.

특사팀은 "팔레스타인 당국자들과 시민사회 인사들로부터 '이스라엘군이 구금 중인 팔레스타인인들을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며 굴욕적으로 대우하고 있다'는 증언을 받았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는 △신체 수색 △강간 위협 △장기간 강제 나체 노출 등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을 당했다는 주장이다. 특사팀은 이 부분도 조사하려 했으나,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거부당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8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한 팔레스타인 소년이 동생으로 추정되는 아이를 카트에 태운 채 이동하며 힘겨운 듯 이마를 팔로 닦고 있다. 라파=AFP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한 팔레스타인 소년이 동생으로 추정되는 아이를 카트에 태운 채 이동하며 힘겨운 듯 이마를 팔로 닦고 있다. 라파=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군, '하마스 연루설' 허위 자백 강요"

이스라엘이 '하마스 연루설'을 제기한 UNRWA를 둘러싼 공방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UNRWA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일부 직원이 이스라엘군에 붙잡혔을 때 '하마스의 공격에 가담했다'는 허위 자백을 하도록 고문과 부당 대우 등으로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앞서 이스라엘은 "UNRWA 직원 12명이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을 지원했다"는 내용의 자체 정보 보고서를 공개했는데, 이는 일부 조작된 것이라는 취지다.

물론 이스라엘은 이를 적극 반박하며 한발 더 나아갔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UNRWA 직원 450명 이상이 가자지구 테러단체의 요원"이라며 구체적 수치를 공개한 뒤, "추가 정보를 국제 동맹국과 유엔에 보냈다"고 말했다. 휴전 협상이 좀처럼 타결을 맺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비방전과 여론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셈이다.

위용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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