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샘플 샅샅이 분석해 투명 보호 필름 국산화 성공"

입력
2024.03.18 04:30
수정
2024.03.18 11:5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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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알루미늄 필름 특화 기업 경북 구미 '서일'
즉석간편식 투명 보호 필름 국내 최초 개발 성공
친환경소재 세계 공략, 적자에도 R&D 투자 확대

편집자주

지역경제 활성화는 뿌리기업의 도약에서 시작됩니다. 수도권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고군분투하는 전국의 뿌리기업 얘기들을 전합니다.

이현철 대표가 친환경소재로 만든 식품포장재 샘플을 들어 보이고 있다. 구미=정광진 기자

이현철 대표가 친환경소재로 만든 식품포장재 샘플을 들어 보이고 있다. 구미=정광진 기자

지난 11일 오전 경북 구미시 산동면 구미국가산업단지 4단지 내 ‘서일 부설 기술연구소’. 6명의 연구원이 온갖 필름을 놓고 서로 비교하거나 초정밀계측기로 각종 테스트를 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환경규제에 대비, 재활용이 용이한 단일소재 투명 보호 필름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서일은 알루미늄 증착 필름 특화기업이다. 30여 년의 업력을 가진, 이 분야의 강자다. 2021년에는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 오던 즉석간편식(레토르트 식품) 포장용 투명 보호(배리어) 필름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증착보호필름 제조업계의 명가

식품이나 화장품 포장재는 변질을 막기 위해 수분이나 산소, 자외선 등 차단 기능이 필수다. 보통 은색의 알루미늄 증착 필름을 포장재로 많이 쓴다. 과자나 라면봉지 안쪽이 은색이라면 알루미늄 증착 필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알루미늄 증착 필름은 베이스필름에 알루미늄을 0.07㎛(100만 분의 1m) 두께로 증착한 것이다. 서일의 주력 제품이기도 하다. 식품포장용은 물론 냉장고 등 전기전자제품용, 자동차 틴팅(선팅)용 등 다양한 용도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국내엔 이 같은 필름 생산업체가 10곳가량 된다. 서일의 기술력이 뛰어나지만, 서일만의 영역은 아닌 셈이다.

이에 서일은 레토르트 식품 투명 배리어 필름으로 눈을 돌렸다. 2015년 입사한 이현철(44) 대표는 “재정상태나 생산 포트폴리오 등을 검토한 결과 향후 10년 정도는 버티겠지만, 그 이후 적자 회사가 될 것 같았다”며 “우리만의 제품이 절실했는데, 식품용 투명 배리어 필름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5년 연구 끝 무에서 유 창조

투명 배리어 필름은 수프, 죽, 즉석밥 등 즉석간편식 식품 포장재 제조에 필수다.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수분 산소 등의 차단성이 탁월해야 한다. 인체에 무해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알루미늄 증착 제품으로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는 중인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기술도, 재정도 전 직원 50여 명의 작은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서일은 도전했고, 성공했다. 지금은 일본으로 역수출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전 세계 투명 배리어 필름 시장은 일본이 90% 이상 장악하고 있었다. 성공하면 매출 증대는 물론 수입 대체로 국내 식품업체 수출경쟁력 제고에도 기여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현철(오른쪽) 대표가 한창 개발 중인 친환경 식품포장재 샘플을 연구원들과 함께 살펴보고 있다. 구미=정광진 기자

이현철(오른쪽) 대표가 한창 개발 중인 친환경 식품포장재 샘플을 연구원들과 함께 살펴보고 있다. 구미=정광진 기자

물론 생산은 쉽지 않았다. 2017년 사내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나섰지만 막막했다. 산화알루미늄을 0.02㎛로 극히 얇고 균일하게 증착해야 하는데, 국내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시도였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물어볼 데도, 벤치마킹할 곳도 없었다”고 돌아봤다. 관련 문헌을 샅샅이 뒤지고 일본에서 열리는 관련 전시회를 모두 참석하며 정보를 수집했다. 어렵게 확보한 샘플을 밤낮으로 분석하면서 2018년 감을 잡고, 2019년 생산 설비를 도입한 뒤 2년 이상 서로 다른 조건에서 300회 이상의 공정테스트 끝에 2021년 양산 기술 확보에 성공했다. 양산설비 구축까지 총 130억 원이나 들였다.

적자에도 매출 10%이상 R&D에 투자

퀀텀닷발광다이오드(QLED) 양쪽에 부착하는 디스플레이용,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든 태양광발전 패널용 등 다양한 용도의 투명 보호 필름도 생산 중이다. 2021년 63억 원이던 매출은 2022년 108억 원, 지난해는 160억 원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250억 원, 내년에는 400억 원 등 2030년까지 1,000억 원 매출 달성이 목표다. 이 대표는 “매출은 크게 늘었는데, 2022년과 2023년 2년 연속 적자가 났다.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가 부담이었다”며 현재 상황을 솔직히 시인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R&D 투자는 지속할 생각이다. “설립 당시 2명이던 연구원은 6명으로 늘었다. 2월에도 2명을 신규 채용했다. 우리 회사 전 직원의 10%가 연구개발 인력이다. 지난해 재무제표상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도 10.7%나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친환경 식품포장재 개발 도전

이현철 대표가 증착필름 생산설비 앞에서 지속적인 기술개발로 대한민국 대표 강소기업을 육성하겠다고 피력하고 있다. 구미=정광진 기자

이현철 대표가 증착필름 생산설비 앞에서 지속적인 기술개발로 대한민국 대표 강소기업을 육성하겠다고 피력하고 있다. 구미=정광진 기자

기존 식품포장재는 보통 서로 다른 종류의 필름을 서너 겹 접착한 복합소재가 많다. 용도나 가격 등에 따라 페트(PET·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나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나일론필름 등을 적절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복합소재는 재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럽연합이나 미국 대다수의 주는 내년부터 단일소재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친환경 식품포장재 사용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서일도 2022년 1월부터 단일 소재 보호 필름 개발에 착수해 기본기술 개발을 마쳤고,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를 인정받아 2022년에는 경북도 ‘프라이드(PRIDE) 기업’으로 선정됐다. 도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강소기업을 대상으로 모두 93개 프라이드 기업을 선정해 금융 기술 마케팅 컨설팅 등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리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최고의 보호 필름은 기술력이다. 친환경 식품포장재도 올 8월쯤 정식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익이 나면 사원과 성과를 공유하는 ‘우리’ 회사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구미= 정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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