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때 사라진 막둥이… 유전자 분석으로 40년 만에 상봉

입력
2024.03.18 16:42
수정
2024.03.18 18:32
2면
구독

1985년 "엄마 찾으러 간다"며 실종
미국 입양 후 한국 2번 왔지만 실패
무연고 입양인 유전자 검사로 재회

다섯 살 때 실종돼 미국에 입양된 박동수씨가 입양 뒤 촬영한 사진. 경찰청 제공

다섯 살 때 실종돼 미국에 입양된 박동수씨가 입양 뒤 촬영한 사진. 경찰청 제공


"나 엄마 찾으러 갔다 올게."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1984년 다섯 살 박동수는 엄마를 찾겠다며 외출했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생사 여부도 행방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엄마를 찾으러 갔다가 실종된 그 아들을 찾아, 엄마 이애연씨는 40년 동안 하루도 마음 편히 잘 수 없었다.

살아선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모자가 최근 경찰과 관계부처의 도움으로 만났다. 유전자 검사 덕분이었다. 아들은 45세, 그때 지금의 아들보다 어렸던 엄마는 83세가 되어 있었다.

이별은 결국 가난 때문이었다.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동수씨는 한 살이던 1980년 생활고 탓에 형·누나와 함께 경남 김해의 큰집에 맡겨졌다. 그러다가 1984년 홀로 "엄마를 찾겠다"며 외출했다 길을 잃었고, 파출소에서 발견됐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보호시설과 입양기관을 거쳐 1985년 미국으로 입양됐다. 엄마는 막내가 미국에 간 사실을 모른 채 어딘가에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 40년을 찾아 헤맸다.

다섯 살 때 실종돼 미국에 입양된 박동수씨가 18일 어머니 이애연씨, 형 박진수씨, 누나 박진숙씨 등과 화상으로 40년 만에 상봉했다. 경찰청 제공

다섯 살 때 실종돼 미국에 입양된 박동수씨가 18일 어머니 이애연씨, 형 박진수씨, 누나 박진숙씨 등과 화상으로 40년 만에 상봉했다. 경찰청 제공

어른이 된 동수씨는 과거 한국을 두 차례 찾아 어머니 행방을 수소문했다. 대학교 3학년이던 2001년 처음 방문했을 때 대한사회복지회를 찾았지만, 입양 당시 기록에서 가족의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2012년에도 한국을 찾아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일치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두 번째 방문 때는 어학당을 다니면서 아예 한국에 눌러앉았다. 그러나 4년 동안 결국 가족을 찾는 데 실패했고, 2016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포기하고 살다가 기적이 찾아왔다. 한국에 사는 동수씨 친형 진수씨가 2021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실종된 동생들을 찾고 싶다"며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어머니 애연씨가 유전자 검사를 받았고, 2022년 8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동수씨와 친자관계일 가능성이 높다'는 감정이 나왔다.

그런데 이번엔 미국에 있는 동수씨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경찰과 관계부처가 합심해 '미국 사는 박동수 찾기'에 나섰다. 제주경찰청 수사팀은 출입국 당국 협조로 동수씨의 미국 내 과거 거주지를 확인했고, 주시카고 총영사관 도움을 받아 현재 주거지를 파악했다. 국과수의 2차 감정을 거쳐 지난달 친자관계임이 최종 확인되면서, 마침내 40년 만의 상봉이 이뤄졌다.

다섯 살 때 실종돼 미국에 입양된 박동수씨가 18일 어머니 이애연씨, 형 박진수씨, 누나 박진숙씨 등과 화상으로 40년 만에 상봉했다. 경찰청 제공

다섯 살 때 실종돼 미국에 입양된 박동수씨가 18일 어머니 이애연씨, 형 박진수씨, 누나 박진숙씨 등과 화상으로 40년 만에 상봉했다. 경찰청 제공

동수씨는 18일 화상을 통해 어머니와 형, 누나를 먼저 만났다. 당장 입국이 곤란해 영상으로라도 만나고 싶다는 동수씨의 바람 때문이었다.

현장에선 가족들의 눈물과 미소가 교차했다. 동수씨는 어색한 한국말로 천천히 아버지를 찾았고, 가족들은 14년 전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전했다. 동수씨는 "너무 늦게... (찾았다)"라며 아쉬워했지만, 형 진수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한테 막둥이(동수씨)랑 진미 찾아보라고 부탁하셨어"라고 웃으며 답했다. 누나 진숙씨는 말을 잇지 못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마음속에 항상 너 옆에 있대, 진미 하고 동수는 항상 마음속에 있대"라며 "엄마가 너 잊지 못하고 있어"라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동수씨는 "친가족과 재회하게 돼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아직 가족을 찾지 못한 해외입양인들이 나처럼 오랜 염원을 이룰 기회를 얻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형 진수씨도 "하루빨리 동생을 찾을 수 있게 해달라며 날마다 기도했는데, 소원을 이루게 됐다"며 "아직 찾지 못한 여동생(진미씨)도 찾을 수 있도록 희망을 잃지 않겠다"고 전했다.

동수씨 가족 만남에는 2020년부터 경찰청, 재외동포청, 아동권리보장원 합동으로 시행하게 된 '무연고 해외 입양인 유전자 검사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 해당 제도는 한인입양인이 △아동권리보장원을 통해 입양정보공개 청구를 신청해 무연고 아동임이 확인되면 △재외공관을 통해 유전자를 채취하고 △채취된 검체를 외교행낭으로 경찰청에 송부해 실종자 가족 유전자 정보와 대조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 14개국 34개 재외공관에서 유전자 채취가 가능하다. 제도 시행 이후 총 296건의 유전자를 채취해, 지금까지 5명의 실종 입양인이 가족을 찾는 성과를 거뒀다.

이승엽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