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을 전했다'는 한동훈의 착각

입력
2024.03.27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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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조기 귀국'만으로 할 일 다한 건가
의정갈등 중재도 '증원 규모' 핵심 피해 가
野 공격보다 尹 약점 보완해주는 역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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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인천 미추홀구 인하문화의거리를 찾아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인천=최주연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인천 미추홀구 인하문화의거리를 찾아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인천=최주연 기자

법무부 장관 시절 호통 치는 야당 의원들을 향해 늘 자신만만하게 받아쳤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여권에 불어닥친 위기를 예상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자신이 '범죄자'로 규정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쌍끌이 중인 정권심판론에 의해서 말이다. 국민의힘에선 용산을 탓하는 하소연이 들린다. 한 위원장이 이종섭·황상무 파문으로 심상치 않은 민심을 전달했건만, 윤석열 대통령이 사흘 만에 수용하는 바람에 수습할 적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이는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한 위원장은 물론 여당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로 출국 금지된 이종섭 주호주대사 임명 당시부터 별다른 문제의식을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를 낸 것은 이 대사의 출국 이후 수도권의 여당 지지율이 급락한 뒤였다. 한 위원장은 이 대사가 귀국한 지난 21일 "(이번 논란은) 공수처와 민주당의 총선을 앞둔 정치질"이라고 했다. 국민 다수는 이 대사 임명부터 공정과 상식에 어긋났다고 보는데, 이 대사의 귀국만으로 "내 할 일을 다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민심을 전달한 쪽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고 있다면 대통령에게 민심이 '제대로' 전달됐다고 할 수 없다.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 중재도 마찬가지다. 의정 갈등 한 달이 지나서야 한 위원장은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과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윤 대통령에게 '전공의 면허정치 처분'에 대한 유연한 처리를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곧바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여당과의 협의를 지시했다. 이번엔 당정 간 손발이 착착 맞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갈등의 핵심인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해선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건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며 발을 뺐다. 이후 "의제를 제한하지 않고 좋은 결론을 내야 한다"고 했지만, 갈등 당사자들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에 의해 사실상 여당 대표로 발탁됐을 당시 기대와 우려는 상존했다. 대통령과 20년 이상에 걸친 인연을 바탕으로 고언을 전해 윤 대통령의 약점인 '불통'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서울대 법대와 검찰 선후배 사이인 만큼 '윤석열 아바타'가 될 것이라는 우려다. 지난 1월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대응을 두고 불거진 1차 윤-한 갈등은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그러나 김경율 비대위원 사퇴, 쌍특검 반대, 감흥 없는 공천 등으로 '한동훈 효과'는 상쇄됐다. 정권심판론에 여권이 현재 속수무책인 이유다.

대통령과 무조건 맞서야 한다는 게 아니다. 여당 대표로서 민심을 정확히 전달하고 정책 대안 제시로 윤 대통령을 보완해 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손쉬운 '이재명·조국 미러링'으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상대를 겨냥한 사이다 발언으로 지지층을 열광케 하는 것은 한 위원장이 평가절하한 '여의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정치인들의 방식이다.

한 위원장은 총선을 불과 2주 앞두고 국회 세종 이전 공약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국회의 완전한 세종 이전과 함께 뿌리 깊은 불신을 만들어 낸 여의도 정치 문화를 청산하겠다"고 했다. 여의도 정치 문화 청산으로 정권심판론에 맞불을 놓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국회 이전으로 여의도 정치 문화를 청산하겠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납득하기 어렵지만,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불식하겠다며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집무실 이전으로 윤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이 강화됐다는 평가는 여권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김회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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