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피하려 돈 안 아껴"... '다단계 1타검사' 이종근 22억 가능했던 이유

입력
2024.04.03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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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수도·조희팔 등 도맡았던 이종근
검찰 안팎 인정받은 다단계 전문가
"다단계에선 업주 안위가 최우선"

이종근 변호사. 법무법인 계단 제공

이종근 변호사. 법무법인 계단 제공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1번 박은정 후보의 남편, 이종근 변호사(전 검사장)가 다단계 사건 피의자들에게 수십억 원을 수임료로 받은 것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20년 넘는 검사 생활 동안 다단계 수사의 최고봉까지 오른 그의 능력 덕분에 벌 수 있었던 돈이긴 하지만, 대기업 사건도 아닌 다단계 사건에서 이런 거액의 수임료가 가능했던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2월 검찰을 떠난 이 변호사는 최대 1조 원대 피해를 낸 '휴스템코리아 다단계 사기 사건' 변호인으로 선임되면서 22억 원의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여러 다단계 사건을 수임해 1년간 약 41억 원의 수임료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 안팎에선 '다단계 저승사자'라 불릴 정도로 검사 시절 이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던 이 변호사의 전문성이 인정받은 결과라고 해석한다. 이 변호사는 평검사 시절부터 굵직한 다단계 사기 사건을 도맡았다. 서울동부지검 평검사 시절인 2006년과 2007년 '단군 이래 최대 사기극'으로 불린 제이유 사기 사건을 수사해 주수도 회장을 구속기소했고, 공소유지까지 담당하며 중형을 이끌었다. 2008년 말 인천지검 부천지청 근무 땐 4조 원대 다단계 사기 주범 조희팔이 밀항 직전 서산·태안 경찰에 5억 원대 로비 자금을 건넸다는 의혹을 수사했다. 수원지검 부장검사 시절인 2016년에는 그가 처리한 다단계 사건만 80건에 달했는데, 대검찰청도 그 전문성을 인정해 다단계 분야 블랙벨트(1급 공인전문검사)로 그를 선정했다.

이 변호사와 근무연이 있는 법조인들은 그를 정의감이 남달랐던 검사로 기억했다. 다단계 사건은 서민을 노린 조직 범죄인 만큼 사기죄를 적극 의율해 엄벌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고 한다. 한 검사장 출신 법조인은 "이 변호사는 다단계 사기꾼들뿐만 아니라 피해자들한테도 유명해, 일부러 그의 부임지를 찾아 고소장을 접수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다른 지검 후배 검사들도 다단계 수사에 어려움을 겪을 때면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특수나 공안도 아니고, 다단계는 '전공'으로 삼기엔 사실 애매한 분야인데, 이 변호사가 개척한 셈"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다단계를 때려잡던 검사는 변호사 개업 직후부터 피의자 편에 섰다. 법조계에서는 고액 수임료의 비결은 다단계 사건의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다단계 사건은 기업 오너가 주범이면서도, 배임·횡령 등의 경영비리가 아닌 사기 범죄다.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커 대형 로펌은 수임을 꺼리지만, 피고인은 고액을 지불할 능력과 의사가 있다. 특히 "다단계 사건처럼 불법 행위로 많은 돈을 쉽게 챙긴 피의자들은 구속이나 중형을 피하기 위해 고액의 수임료를 선뜻 지불한다"는 게 법조계 전언이다. 다단계 사기 사건을 많이 해본 한 법조인은 "굴러가기만 하면 계속 수익이 나는 다단계 업체의 핵심 자산은 업주(주범)의 감언이설"이라며 "(거액을 들여서라도) 업주의 불구속이 중요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또 다단계 사건 처벌 수위는 변호사 역량에 따라 많이 좌우되는 편이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다단계 사건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투자로 인한 손해로 볼 것인지 사기로 인한 피해로 볼 것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변호사는 '사기 피해'로 인정되는 사례를 줄여 피고인의 형량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형량이 높은 사기죄보다는 불구속 재판이나 집행유예가 가능한 방문판매법 위반이나 유사수신행위법 위반으로 의율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변호사가 많은 돈을 받고 피의자를 변호하는 게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검사장까지 지낸 법조인이 다중 피해 사기 사건을 고액 수임하는 것에 대해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적지 않다. 한 법조인은 "변호사 수임료도 결국 피해자들의 돈"이라고 지적했다.

최동순 기자
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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