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한 단협” “구속력 없는 문서”… 정부-사법부 '법적 다툼' 벌이나

입력
2024.04.04 16:00
수정
2024.04.04 18:1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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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노사 맺은 '정책추진서' 두고
고용부 "실정법 위반" 시정 명령
법원행정처 "의지 표현일 뿐" 불복
전문가 의견도 엇갈려... 소송 불가피할 듯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동정책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와 사법부 엘리트 조직인 법원행정처가 ‘노동법 해석’을 둘러싸고 법적 분쟁을 벌일 참이다. 서울고용노동청이 법원행정처와 법원노조(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가 맺은 정책추진서가 ‘위법’이라고 판단하고 시정명령을 내리자, 법원행정처가 “서울고용노동청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불복하고 나선 것이다.

해당 정책추진서에는 ‘오후 6시 이후 재판 자제’ 등 67개 내용이 담겨 있다. 고용부는 “정부의 정책결정, 임용권 행사, 관리운영 등은 비교섭 사항으로 노사 간 교섭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했지만, 법원행정처는 “상호 신의로 향후 추진하고 노력한다는 입장에서 서로 작성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4일 양 기관과 노동계에 따르면 고용부가 지난 1일 법원행정처 노사에 내린 시정명령의 핵심은 ‘공무원노조법 위반’이다. 고용부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정책추진서가 사실상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이며, 주요 내용들은 공무원노조법상 비교섭 사항이라고 규정했다. 정책추진서에는 △오후 6시 이후 재판 자제 △법원이 운영하는 위원회에 노조 참여 보장 등의 내용이 담겼다.

법원행정처는 ‘단체협약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법원행정처는 입장문을 통해 “정책추진서는 단체협약과 효력을 달리하는 문서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단체협약임을 전제로 ‘비교섭 사항’이 포함됐다고 시정 명령한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노사 간 의견을 같이한 내용을 앞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일 뿐”이라고 했다.

법원노조도 고용부 판단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원노조 관계자는 “단체협약이냐 아니냐는 구속력 여부에서 갈린다”며 “정책추진서는 양측의 정책 추진 의지를 담은 내용일 뿐 구속력이 없다”고 했다. 이어 “노사 모두 구속력이 없다고 부인하는데 정부가 무리하게 단체협약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노조 탄압의 일환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전문가 판단은 엇갈린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양측이 단체협약으로 체결할 수 없는 내용임을 알기 때문에 이를 우회한 편법적 문서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며 “단체협약이라는 명칭이 없더라도 정책추진서를 만든 주체가 노사 대표자이고 그 내용이 조합원의 권리와 지위에 관련됐다면 단체협약 성격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공무원 노조법이 단체협약을 금지하고 있지만 다른 형태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대화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단체협약의 한계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근로조건 개선을 협의했는데 정부의 위법하다는 판단은 노사자치주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다.

행정부와 사법부 간 법적 다툼이 예상된다. 법원행정처는 “향후 검토를 거쳐 이의 등을 통해 (시정 명령을) 바로잡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고용부는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법원행정처를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형사처벌한다는 입장이다. 서울고용청 관계자는 “고용부에는 법원행정처가 언급한 별도의 이의신청 절차가 없어 결국 효력정지 신청 등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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