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연설비서관 강원국 "윤 대통령,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을 말하라"

입력
2024.04.14 13:00
수정
2024.04.14 19:1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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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연설비서관' 강원국 작가의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 메시지 위한 제언
①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걸 말해야 한다
②대통령이 '도덕적 심판자'여서는 안 된다
③이해 구하고 책임지는 말을 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리더의 글쓰기와 말하기에 대한 책을 펴내고 있는 강원국 작가.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리더의 글쓰기와 말하기에 대한 책을 펴내고 있는 강원국 작가.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4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가 기각된 뒤 업무에 복귀하면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경제 올인'을 외쳤습니다. 국민은 환호했고요. 싸우는 건 관심 없으니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한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할 일도 그겁니다. '더는 싸우지 않겠다, 확실히 방향 전환하겠다'는 걸 화법에서부터 보여줘야 합니다. 대통령 지지율이 워낙 낮아서 치고 올라갈 여지도 큽니다. 그렇게 못하면 앞으로 계속 어렵겠지요. 그건 국가적 불행이기도 하고요."

정부·여당의 불통은 지난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핵심 이유로 꼽힌다. 이 불통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김대중·노무현 정부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원국(62) 작가에게 전화로 물었다. 그는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나는 말하듯이 쓴다' 등 리더십과 말하기와 글쓰기에 대한 책을 써왔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지난 10년간 50만 부가 판매됐다.

'하고 싶은 말'을 제일 나중에 하는 게 대통령

강 작가가 꼽은 윤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내가 말하기 전에 국민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먼저 해줘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내가 하고픈 말을 하는 게 대통령이에요."

왜 그럴까.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이란 건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 보자면 누군가 양보하고 희생해야 하는 문제에 대한 겁니다. 인기도 없고 아무도 안 듣고 싶어하는 말인데, 국정과제를 총괄하는 대통령이니까 할 수밖에 없고 해야만 하는 말이에요. 그렇기에 대통령이 평소에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열심히 하면서 점수를 따둬야 하는 겁니다. 그걸 인기 영합이나 대중 편승이라 보면 절대 안 됩니다."

2022년 11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취재진과 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

2022년 11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취재진과 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말 잊어야

강 작가는 검사 시절 많은 국민에게 각인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대통령의 말이 오히려 독이 됐다고 봤다. "그런 말로 대통령이 됐으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났고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는 걸로 보인다"는 것이다.

강 작가가 제시한 다음 과제는 '상대가 아무리 미워도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통합의 언어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특징을 '통합의 메시지가 없어도 너무 없다'는 데서 찾았다. "대통령은 도덕적 심판자가 아니에요. 이 세상 다양한 세력들 간의 공존을 잘 조율해 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자꾸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응징해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만 그러는 게 아니라 참모나 내각에다 대고 '나가서 싸우라'고도 했죠."

2013년 10월 국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 그는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로 '윤석열' 이름 석 자를 국민들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3년 10월 국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 그는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로 '윤석열' 이름 석 자를 국민들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해를 구하는 게 훨씬 더 책임감 있는 모습

마지막으로 '책임의식이 강렬하게 드러나도록 말해야 한다'고 강 작가는 조언했다. "대통령과 여당이 실제로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책임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나랏일에 대해 책임의식이 분명히 있는 사람은 뭔가 문제가 생기면 '일이 이러저러하게 됐다'고 경위도 설명하고 사과도 하고 이해를 구하면서 머리를 숙입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에요."

그러면서 강 작가는 반문했다. "윤석열 정부는 그런 장면을 보여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단순히 '남 탓'이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식 자체를 보여주지 못하는 거죠."


지난 1일 '의사 카르텔' 문제를 거론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서울 중구 한 병원의 TV에서 방영되고 있다. 정다빈 기자

지난 1일 '의사 카르텔' 문제를 거론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서울 중구 한 병원의 TV에서 방영되고 있다. 정다빈 기자


절제해서 신뢰 얻으면 아직 기회는 있다

윤 대통령은 변할 수 있을까. 강 작가는 "사실상 어렵다"고 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언행에 대해 많은 지적을 받았고 나중에 스스로 고치기 위해 무척 노력했지만 완전히 고쳐지지는 않았다. 다만 노력은 할 수 있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 연습부터 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 그분들 얘기를 잘 들어주기만 해도 칭찬받아요. 그 쉬운 걸 왜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거기에 더해 말을 줄여야죠. 말하는 스타일 자체가 변하기 어렵다면 절제하는 게 방법입니다.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됩니다. 억울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일단 나부터 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믿음을 얻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그 뒤에 자연스럽게 오해를 풀 기회가 생길 겁니다."






조태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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