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김민진씨 "자녀 통해 코리안 드림 완성하고 싶어요"

입력
2024.04.2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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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 9살 연상 남편과 결혼해 군위 정착
처음 본 한국 시골 "화성에 불시착한 느낌"
아이들 예술적 있어…재능 꽃 피우기 소망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김민진씨의 자녀들이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씨는 “자녀들 모두 어머니로부터 예술적 DNA를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맏이 이유진(23)씨, 막내아들 이창원(13)군. 둘째 이창민(21)씨. 김광원 기자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김민진씨의 자녀들이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씨는 “자녀들 모두 어머니로부터 예술적 DNA를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맏이 이유진(23)씨, 막내아들 이창원(13)군. 둘째 이창민(21)씨. 김광원 기자


김민진씨가 군위가 가족센터에서 공연 연습을 하던 중 쉬는 시간에 재미있는 포즈로 카메라 앞에 섰다. 김광원 기자

김민진씨가 군위가 가족센터에서 공연 연습을 하던 중 쉬는 시간에 재미있는 포즈로 카메라 앞에 섰다. 김광원 기자


"처음 군위군에 도착했을 때 화성에 떨어진 기분이었어요."

김민진(51·본명 라켈 마틴 산티아고)씨는 2001년 1월에 아홉 살 연상의 한국인 남편을 따라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이주했다. 인천공항에 내려 차를 타고 다섯 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곳은 대구시 군위군 광현2리. 고향과 비교해 한국의 시골 풍경은 황폐함 그 자체였다. 김씨는 "일년 열두달 꽃 피고 새 우는 곳에 살다가 푸른 빛 하나 없는 산과 들을 보고 있자니 전쟁 후의 폐허가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5년 남짓 남편과 농사를 지으면서 광현2리에 살았다. 안 되는 게 너무 많았던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매일 샤워를 할 수 없다는 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필리핀에서는 하루에 몇 번씩 물을 뒤집어쓰고 자주 옷을 갈아입는 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사치였다. 김씨는 읍내 아파트로 이사 온 뒤에야 매일 샤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읍내로 집을 옮긴 뒤 다양한 '사업'에 도전했다. 2013년 읍내에 커피숍을 차렸다. 4년 동안 가게를 꾸렸다.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커피숍이 들어서는 바람에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2019년에는 설렁탕집에 도전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2021년에 문을 닫았다. 지금은 군위에 있는 'A청소년의 집'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위생사로 취업했다. 올해 초 4년 만에 조리사로 '승진'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한다. 6시30분에 첫 끼니를 차려야 하는 까닭이다. 요리 실력을 키우기 위해 군위보건소에서 진행하는 요리교실에서 배우고 있다.

한국에 살면서 본인도 몰랐던 면모를 발견했다. 바로 음악과 춤에 관한 재능이었다. 필리핀에 있을 때도 음악을 좋아해 한국 가요 ‘만남’을 즐겨 불렀지만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재능을 꽃피우고 있다. 필리핀, 베트남, 중국, 네팔 등에서 온 다문화가정 며느리 11명이 모여서 만든 동아리에서 늘 리더 역할을 한다. 난타, 줌바, 사물놀이 등 연습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크고 작은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2017년 대구에서 전국의 결혼 이주 여성들이 모여 벌인 댄스 경연대회에서 필리핀 춤으로 대상을 차지한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당시 전국에서 92개 팀이 몰렸다.

김씨의 예술적 DNA를 가장 여실하게 증명하고 있는 것은 자녀들이다. 큰딸과 아들 둘 모두 예술 쪽에 재능을 보이고 있다. 딸은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하다가 경제적인 문제로 잠시 쉬고 있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경제적인 상황이 풀리면 언제든 다시 음악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둘째 아들은 미술에 관심이 많다. 친구들 사이에선 그림 잘 그리는 '외모 천재'로 통한다. 우선 키가 180㎝를 훌쩍 넘는 데다 얼굴도 호감형이다. SNS에 사진을 올리면 간간이 의류 회사에서 '우리 회사 옷을 입어달라'는 메시지가 날아올 정도다. 막내는 노래를 곧잘 하지만 아직 초등학생이어서 뚜렷하게 두각을 드러내는 분야는 없다.

김씨는 "내 안의 예술적 재능이 아이들에게 내려간 듯하다”면서 “아이들 모두 예술적 재능을 꽃피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직도 군위에 처음 와서 보았던 겨울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한마디로 한국의 첫인상은 황량한 나라였어요.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금은 꽃 피고 새 우는 나라입니다. 재능을 꽃피우고 여러 사람에게 인정받는 건 정말 아름다운 삶인 것 같아요. 아이들 모두 재능을 아름답게 꽃피워서 저의 코리안드림이 아이들을 통해 완성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김민진(오른쪽 다섯번째)씨가 군위군 가족센터에서 결혼 이주 여성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광원 기자

김민진(오른쪽 다섯번째)씨가 군위군 가족센터에서 결혼 이주 여성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광원 기자




김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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