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 의사보다 행복해요"... '일당 15만 원' 서울대 출신 목수

입력
2024.04.21 07:00
수정
2024.04.21 12:2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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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학년도 수능서 4개 틀려
최상위 성적으로 서울대 입학
학사경고, 휴학 반복… 제적돼
밴드·수제맥주 하다 목수의 길
"하고픈 일, 학교 밖… 후회 없어"

지난 17일 경기 여주시 강천면 한 공사현장에서 장윤해씨가 목재를 자르기 위해 목재절단기를 살펴보고 있다. 여주=윤한슬 기자

지난 17일 경기 여주시 강천면 한 공사현장에서 장윤해씨가 목재를 자르기 위해 목재절단기를 살펴보고 있다. 여주=윤한슬 기자

'드르륵, 드르륵.'

지난 17일 경기 여주시의 한 전원주택 공사현장. 검은색 옷을 입은 한 청년이 바삐 움직였다. 청년은 집 안 곳곳에 필요한 목재를 자르고, 자른 목재에 목공풀을 뿌렸다. 아슬아슬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천장에 기다란 목재를 갖다 붙였다. 어느새 그의 검은 옷과 신발은 먼지와 톱밥가루로 잿빛이 됐다.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난 뒤에야 재투성이 청년은 말갛게 웃었다. 신입 6개월 차 목수 장윤해(32)씨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장씨는 "작은 방 하나를 맨벽에서부터 시작해 혼자 목공을 다 마무리했다"며 뿌듯해했다.

서울대 출신 6개월 차 신입 목수

장윤해씨가 17일 경기 여주시 강천면 한 공사현장 휴게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여주=윤한슬 기자

장윤해씨가 17일 경기 여주시 강천면 한 공사현장 휴게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여주=윤한슬 기자

장씨가 처음부터 목수가 되려던 건 아니었다. 3년 전 자신의 월세방을 셀프로 고치다 목공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해 11월 젊은 목수들로 구성된 인테리어 목수팀 '목수수첩'에 9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막내로 합류했다.

최근 유튜브 채널 '열현남아'에 장씨의 사연이 소개되면서 그의 이력도 주목을 받았다. 재수를 한 장씨는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전 과목에서 단 4문제만 틀린 최상위권 수재였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비롯한 전국 대학과 학과에 진학이 가능했다"며 "너도나도 의대를 가라고 했지만 단 한 번도 의사가 되고 싶었던 적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고 했다.

부모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를 택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서였다. 장씨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중상위권 정도의 평범한 학생이었다"며 "부모님이 높은 연봉과 사회적 위치 때문에 의사를 하라고 했지만 저는 동물을 좋아해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부모는 수의사가 되겠다는 그의 꿈에 반대했다. 부모와의 갈등 끝에 수의대도 포기했다.

지난 17일 경기 여주시 강천면 한 공사현장에서 장윤해씨가 긴 목재를 옮기고 있다. 여주=윤한슬 기자

지난 17일 경기 여주시 강천면 한 공사현장에서 장윤해씨가 긴 목재를 옮기고 있다. 여주=윤한슬 기자

장씨의 대학 생활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강의실 대신 대학 밴드 동아리방과 PC방 등을 전전했다. 그는 "고생해서 대학에 들어왔으니 첫 학기는 마음껏 놀겠다고 각오하고, 학사경고를 받아야겠다는 유치한 생각을 했다"며 "시험 보는 날 강의실 앞까지 가서 친구들한테 시험 잘 보라고 손 흔들어주고 저는 시험장에 안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1학기가 끝나고 입대했다. 제대했지만 학업은 뒷전이었다. 그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다 학교 밖에 있었다"며 외부 활동에 치중했다. 홍대에서 밴드 활동을 하며 공연도 수차례 했다. 5년간 수제 맥주를 배우기도 했다. 그새 학교와는 더 멀어졌다. 결국 학사경고를 4번이나 받고 입학한 지 9년 만인 2021년 제적됐다. 장씨는 "졸업은 하라는 부모님의 설득에 학교에 다시 갔지만, 의미를 찾지 못해 다닐 의욕을 잃었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하면서 사는 게 가장 큰 행복"

장윤해씨가 17일 경기 여주시 강천면 한 공사현장에서 레이저 측정기로 목재 작업을 할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장씨의 신발에 먼지와 톱밥가루가 잔뜩 묻어있다. 여주=윤한슬 기자

장윤해씨가 17일 경기 여주시 강천면 한 공사현장에서 레이저 측정기로 목재 작업을 할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장씨의 신발에 먼지와 톱밥가루가 잔뜩 묻어있다. 여주=윤한슬 기자

천직은 학교 밖에 있었다. 오랜 방황 끝에 그는 일당 15만 원을 버는 목수의 삶을 택했다. 의대에 진학했더라면 지금쯤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 의사가 됐을 터. 아쉬워하는 주변의 반응과 달리 그는 "지금의 길을 선택한 것에 조금의 후회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의대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안정적인 소득이지 않냐. 저는 돈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어서 의사를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목수 일을 하면서 대학에서 느끼지 못했던 성취감도 느끼고 있다. 장씨는 "목재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맞춰 넣을 때처럼 쉽지 않은 작업을 잘 해내면 성취감이 매우 크다"며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벽과 천장을 만들고 가구같은 구조물을 만드는 작업에서 큰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최근 장씨처럼 고학력 젊은 세대들이 기술직에 뛰어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는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은 고학력 여부를 떠나 좋은 현상이다"라며 "하지만 사회적 통념에 비춰 이런 젊은 세대들을 별종으로 분류하는 현상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적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 맞춰 사는 행복을 전했다. 장씨는 "대부분 공부를 잘해서 의사가 되거나 대기업에 들어가 돈을 벌면서 정작 좋아하는 일은 다른 곳에서 찾는다"며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스스로 원하는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이 삶이 내겐 가장 큰 행복이다"라고 했다.

여주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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