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투성이 된 채 집 밖으로 버려진 반려묘.. “가해자는 이웃 주민”

입력
2024.04.21 09:00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던 중학생 A군은 그날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던 A군의 귀에 무언가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상한 소리에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니, 한 남성이 고양이 한 마리를 계단 밑으로 밀쳐내듯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벽에 부딪히며 피를 토했고, 남성은 그런 고양이를 계속 아래층으로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A군은 두려운 마음에 뒷걸음질치며 건물 밖으로 도망쳤습니다. 건물 밖으로 도망치기 직전 A군은 “이러시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소리쳤지만, 남성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A군은 건물 주차장에 숨은 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희동이 잘 있지? 집에 있지?”

A군은 남성이 밀어내는 고양이가 자신의 반려묘 ‘희동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어머니 B씨에게 전화를 건 겁니다. B씨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난 뒤에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집안을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희동이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옥상에 이불 세탁물을 널어놓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간 틈에 희동이가 복도로 나온 겁니다. 부랴부랴 B씨는 집 밖으로 나와 상황을 파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남성에 의해 건물 밖으로 버려지듯 내동댕이쳐진 희동이는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지난 3월, 서울의 한 주택가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입니다. 희동이가 세상을 떠난 직후, B씨는 범인이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남성 C씨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B씨는 C씨의 집에 가 직접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나 C씨는 “현관에 고양이가 코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기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불편할까 봐 치우려 했다”며 “길고양이인 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B씨는 그 자리에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현장에 남은 희동이의 혈흔과 인근 지역 CCTV, 동물병원 엑스레이 촬영본을 확보해 경찰에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약 2주간 수사한 경찰은 최근 C씨를 동물보호법 위반(동물학대)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C씨의 행동을 동물학대로 여긴 겁니다.

C씨는 ‘길고양이인 줄 알았다’고 주장했지만, B씨의 생각은 다릅니다. 과거 C씨가 건물 보수 문제로 B씨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B씨는 “우리 집에 고양이가 있으니 현관문을 빨리 닫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사실도 경찰에 진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건 직후 희동이는 생존한 상태였다. 그러나 동물병원에 옮겨진 뒤 곧바로 숨을 거뒀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사건 직후 희동이는 생존한 상태였다. 그러나 동물병원에 옮겨진 뒤 곧바로 숨을 거뒀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더군다나 길고양이라 하더라도 고양이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동물학대로 볼 수 있습니다. C씨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희동이는 당시 살아 있는 상태였고, 청소 도구로 밀어내며 건물 밖으로 내동댕이치듯 버리는 것은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입니다. 사건을 공론화한 동물자유연대 노주희 활동가는 “동물에게 부여된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 간에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이라며 “본인의 행동을 무마하려는 듯한 변명”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게다가 ‘길고양이인 줄 알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길고양이냐 아니냐는 가중처벌 요소일 뿐, 유무죄를 가릴 사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 한재언 변호사는 “사건의 핵심은 길고양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실제로 폭행을 가했는지, 그 폭행이 동물이 목숨을 잃을 만큼 심각했는지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건 발생 시각을 되짚어봐도 C씨의 주장은 일관되지 않았습니다. B씨는 “사건 직후 C씨는 ‘4시쯤에 등산에 다녀오니 고양이가 코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기에 치우려 했다’고 말했다”고 말했습니다. A군이 집에 돌아온 시점이 3시 57분경이었으니, C씨의 주장은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듯합니다.

세상을 떠난 뒤 촬영된 희동이의 엑스레이 사진. 수의사는 두개골이 외력에 의해 움푹 패인 게 있다는 소견을 밝혔다. 또한 외력으로 인해 장기에서 내출혈이 발생했다고도 덧붙였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세상을 떠난 뒤 촬영된 희동이의 엑스레이 사진. 수의사는 두개골이 외력에 의해 움푹 패인 게 있다는 소견을 밝혔다. 또한 외력으로 인해 장기에서 내출혈이 발생했다고도 덧붙였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그러나, 실제 CCTV가 말하는 사실은 달랐습니다. C씨가 집에 들어가는 시각은 초기 주장보다 1시간 앞선 오후 3시였던 겁니다. B씨가 비슷한 시각에 이불 세탁물을 말리기 위해 옥상에 올라간 만큼, 희동이가 복도로 나왔던 시각과 비슷합니다. B씨는 “영상 증거가 없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처음에 희동이를 보고 학대한 뒤에 4시경 피투성이가 된 희동이를 치우려다 목격된 것 같다”고 추정했습니다.

그렇다면, 목숨을 잃을 때 희동이의 상태는 어땠을까요? 당시 희동이를 진단한 수의사는 “두개골이 외력에 의해 함몰된 상태였고, 내부 장기 손상으로 피를 토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내놓았습니다. 실제로 B씨도 “직접 희동이의 머리를 만져보니 두개골이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움푹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이 같은 진술과 증거를 종합해 C씨에게 혐의가 있다고 보고 사건을 검찰에 넘긴 듯합니다. 앞으로 남은 검찰 조사와 재판에서 중요한 쟁점은 C씨가 실제로 희동이를 폭행했는지를 가려내는 데 있습니다. 한재언 변호사는 “소견상 희동이가 입은 외상과 C씨의 행동이 연결될만한 행위를 입증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며 “만일 그게 입증된다면 학대행위로 동물이 목숨을 잃었으므로 동물보호법 10조 1항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동물보호법은 학대행위로 동물을 죽게 한 사람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C씨의 행동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잘잘못이 가려지겠지만, 이웃에 의해 반려동물이 죽음에 내몰렸다는 사실에 B씨 가족은 매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최소한의 유감 표시도 하지 않는 태도에 정신적인 상처는 더욱 심각하다고 합니다.

반려묘 '희동이'의 생전 모습. 보호자 가족은 희동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반려묘 '희동이'의 생전 모습. 보호자 가족은 희동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한 건물에 살다 보니 마주칠 수밖에 없어요. 엊그제도 C씨와 그 가족을 마주쳤는데,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저를 째려보다 내려가더라고요. 마치 ‘이딴 일로 네가 나를 경찰에 고소하느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희동이 보호자 B씨, 동그람이와의 통화에서

B씨뿐 아니라 목격자 A군도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B씨는 “아들이 살면서 어른에게 대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면서 “이런 일을 처음 겪다 보니 어쩔 줄 몰라 아무것도 못 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죄책감을 심하게 갖고 있다”고 아들의 상태를 대신 전했습니다. B씨 또한 문을 열고 나갈 때 한 번 더 확인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봤을 때, C씨가 희동이를 잔혹한 방식으로 죽음에 몰아넣었다”며 C씨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 탄원을 받고 있습니다. 노 활동가는 C씨를 향해 “자신의 행위가 동물학대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응당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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