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범이 꿀꺽한 범죄수익 150억... 변호사들이 은닉 도왔다

입력
2024.04.29 17:02
수정
2024.04.2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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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례지구 '고엽제 전우회' 분양사기범
수익 감추는 것 도운 변호사들도 기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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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분양사기 사건 주모자가 빼돌린 150억 원대 범죄수익을 숨기는 과정을 앞장서 도운 변호사들이 재판을 받게 됐다. 이 변호사들은 사기범의 형량을 낮추기 위해 가짜 자료를 내 법원을 속이는 등, 적극적으로 범행을 숨기려 한 혐의를 받는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부장 이희찬)는 29일 건설사 대표 함모씨, A 변호사와 B 변호사 등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함씨는 2013년 '고엽제 전우회 주택사업단'이라는 유령 단체를 내세워 위례지구에 아파트 부지를 분양 받았다. 그는 고엽제 피해자들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것처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을 속여 수백억 원대 불법 수익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1심에서 징역 9년과 180억 원의 몰수·추징을 선고 받았고, 이 판결이 2019년 7월 확정돼 수감 중이다.

함씨는 옥중에서도 범죄수익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범행을 이어갔다. 검찰에 따르면 함씨는 2018년 3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회사 명의로 취득한 범죄수익을 △대여금 △용역 대행비 △유상증자 대금 납입 등 명목으로 회계처리한 뒤, 자신 명의의 별도 법인에 이전하는 수법으로 약 151억 원을 감췄다. 빼돌린 돈은 부동산 매입, 가족 급여, 자동차 구매, 변호사 수임료 등에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변호사들도 고액의 수임료를 받고 범행에 가담했다. A 변호사 등은 함씨의 2심이 진행 중이던 2019년 1월 형량을 낮추기 위해 "횡령 피해금액을 갚았다"는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수사 결과 이 자료들은 횡령액 중 18억 원을 갚은 것처럼 꾸며, 재판부를 속이려 한 가짜문서였다. 함씨는 옥중에서 회사 직원 등에게 범죄수익 은닉을 위한 수법을 전달했는데, 검찰은 이 과정에 변호사들이 가담한 사실을 파악했다.

A 변호사는 2019년 7월 함씨가 대법원에서 형을 확정 받아 더이상 변호인 접견을 하지 못하게 되자, "함씨가 월급을 떼먹었다"는 허위 고소장을 제출하도록 해 해당 사건 변호인으로 함씨를 계속 접견(무고)한 혐의도 받고 있다. 변호인 접견은 횟수나 시간 제약이 없고, 교도관이 입회하지 않은 채 자료를 주고 받으며 접견할 수 있어 일반 접견에 비해 현저하게 유리하다.

검찰은 이 변호사들의 행위가 변호인 조력권의 한계를 한참 이탈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기관을 상대로 반복적 기망 행위를 한 '변호사 도덕적 해이'의 전형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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