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는 환자의 자만을 노린다

입력
2022.07.11 00:00
수정
2022.07.11 10:42
26면

편집자주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항암 성공 20대 청년, 돌연한 응급실행
'완전관해' 판정 후 11개월 임의 방치
연명의료중단 논란 속 안타까운 죽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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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세 청년이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환자는 2주 전부터 두통이 지속되었는데, 당일에는 머리 전체가 깨어지듯 아프고 구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집 근처 병원에서 뇌 전산화단층촬영(CT)을 한 결과, 뇌출혈이 발생했다고 판단되어 응급처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환자는 군대 복무 중 몸에 멍이 쉽게 생겨, 국군수도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해 보았고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진단받았다. 의병 제대후 한 대학병원에서 표적항암제인 글리벡으로 치료를 시작하였다. 약 3년 5개월간의 치료 후, 백혈병 세포가 더 이상 혈액 중에 보이지 않고 유전자 검사에서도 이상 소견이 없어져 완전관해(모든 질병 증상이 없어지고 혈액과 골수가 정상 모양과 기능을 되찾음) 판정을 받았다.

장기간 항암치료에 지쳐있던 청년은 완전관해라는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더 이상 병원을 찾지 않았다. 암은 재발할 우려가 큰 질병이어서 지속적인 치료와 관찰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예약된 외래진료에 오지 않았다. 환자가 응급실로 온 때는 처방받은 항암제 투약을 본인 임의로 중단한 지 11개월이 지난 후였다.

응급실에서 시행한 혈액의 현미경 검사 결과 백혈병 세포 수는 다시 증가해 있었고, 백혈병 악화 때 수반되는 혈소판 수의 감소가 뇌출혈의 원인이었다. 뇌출혈로 인한 뇌압 상승이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머릿속에 형성된 핏덩이를 제거하는 응급수술을 시행했다. 그러나 여전히 뇌압이 조절되지 않아, 뇌에서 생성되는 액체를 체외로 배출시키는 수술을 추가로 받았다.

수술 후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를 위해 최근 개발된 표적항암제 신약을 투약하니, 비정상적 백혈병 세포 수가 61만 개에서 1,900개로 줄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속적인 뇌압 상승으로 환자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 하고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뇌손상이 발생하여, 회생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신경과 전문의에게 전해 들은 청년의 부모는 충격에 빠졌다. 오랜 기간 아들의 힘든 투병 과정을 지켜봐 온 부모는 중환자실에서 임종실로 옮겨 모든 가족이 모여 마지막이라도 편하게 보내주고 싶다며 연명의료중단 의사를 밝혔다.

연명의료중단을 결정하려면 환자 가족의 동의뿐만 아니라,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는지 여부를 전문의를 포함한 의사 2명 이상이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신경과 전문의는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고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였으나, 수년간 환자에게 항암치료를 해왔던 혈액내과전문의는 동의하지 않았다. 신약 항암제 투약 후 백혈병 세포 수가 감소하고 있어 환자가 회생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젊은 환자가 아직은 임종과정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신경과와 혈액내과 전문의 사이에 임종기 진단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의료기관 윤리위원회에 안건이 상정되었다.

일반인들께서는 연명의료중단 결정에 대한 의견 불일치는 가족 사이, 혹은 의료진과 가족 간에 일어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진료 현장에서 보면 의료진 간에 환자 상태 등에 대한 의견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에는 더 많은 의료진이 참여하는 윤리위원회에서 판단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윤리위원회 개최를 기다리던 중, 급격히 환자 혈압이 저하되고 상태가 악화하여, 혈액내과전문의도 임종기에 도달하였음에 동의하였다. 의료진은 심폐소생술 등 추가적 연명의료는 시행하지 않고 편안한 임종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중환자실이 아닌 임종실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들을 보내주고 싶다는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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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석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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