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0세반'이라는 선택지

입력
2022.10.1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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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세종시 아이누리 어린이집을 찾아 아이들과 시장놀이를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세종시 아이누리 어린이집을 찾아 아이들과 시장놀이를 하고 있다. 뉴스1

생후 9개월, 10개월, 11개월. 친구의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시기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뒀지만, 막상 등원이 다가오자 잠을 다 설쳤다던 한 친구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처음으로 보낸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서는 길, 닫힌 문 너머로 들려오는 서글픈 울음소리에 차마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한참 맴돌았다는 것. 또 다른 친구는 어린이집 등원을 앞두고 어땠느냐고 묻자 다소 쿨한 태도로 이렇게 답했다. "걱정을 하거나 말거나 보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냈지."

고백하자면 주변에서 하나, 둘 실제로 아이를 낳기 전까지 0세부터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몰랐다기보다 자기 일이 아니기에 관심이 없었다는 편이 맞겠다. 그렇게 어린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뭘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이 궁금증은 최근 상상하지 못한 인물이 해결해줬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세종시의 한 어린이집을 찾아 "아주 어린 영유아들은 집에서만 있는 줄 알았더니 두 살이 안 된 아기들도 여기 온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이어 "그 아기들은 뭐해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0~1세 24개월 이하 영유아의 숫자는 37만2,000명에 달한다. 대통령이 저출산 위기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찾은 돌봄 현장에서 궁금증 해소 목적으로 던질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대통령 발언을 '보육 참사'라고 비판하자 수습에 나선 보건복지부 장관의 해명은 설상가상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를 "(대통령이) 가정양육의 중요성을 설명한 것 같다"라고 했다. 설명대로 대통령의 의중이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영유아 시절에는 가정양육이 중요하다'라는 의미였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정부가 1가정 1보육 전문가를 24시간 파견할 계획이 아닌 이상 가정양육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부부 10쌍 중 5쌍은 맞벌이를 한다. 전체 가구 수의 7%에 달하는 한부모 가구는 또 어떤가. 이들에게 어린이집은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어쩔 수 없음에도 하원시간 어린이집에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아이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는 부모들은 가정양육의 중요성을 몰라서 천금 같은 아이를 가정 밖에 맡긴 게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이를 기르면서 아이를 향한 미안함만 품을 수 있다면 다행일 지경이다. 신세지는 조부모, 친인척, 회사동료, 퇴근이 늦어지는 날엔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송구한 것이 부모의 삶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도 어린이집 관련 예산안에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전년 대비 19.3%(117억3,300만 원) 삭감됐다. 어린이집 기능 보강 개선 예산도 올해보다 10% 줄었다. 어린이집 관련 예산의 감소는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년 처음 시행하는 '부모급여' 때문으로 보인다. 만 0세 아동에게 내년 70만 원·2024년부터 100만 원, 만 1세 아동에게 내년 35만 원·2024년부터 50만 원을 준단다.

매년 꾸준히 오르는 출산과 아동 관련 수당을 보면 의문이 든다. 과연 정부가 얼마를 지원해줘야 안 그래도 살기 팍팍한 세상을 상대로 연신 '죄송스러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부모의 죄책감이 비로소 덜어질까.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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