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특례법은 의사특혜법"... 환자단체 일제히 반발

입력
2024.02.28 18: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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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제도 개선 않고 기소만 제한해"
"정부-의협 협상에 환자만 희생된다" 주장
복지부 "기소 건수 많아 특례법 필요하다"

22일 오전 서울 시내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오가고 있다. 뉴스1

22일 오전 서울 시내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오가고 있다. 뉴스1

"의료사고특례법이 아니라 의사특혜법이죠."

김성주 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가 28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환자들은 지금도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데 왜 또 환자들을 희생시키는 카드를 들고 나왔는지,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날 발표한 의료사고특례법 제정안에 환자단체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환자·보호자들은 "지금도 의료사고 분쟁에선 구조적으로 환자가 불리한데 이를 더 악화시킨 법안"이라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정부 법안은 의사가 책임·종합보험에 가입한 경우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형사절차가 아닌 조정·합의로 갈등을 해결하는 게 핵심이다. 보상 상한선이 있는 책임보험에 가입한 의사가 의료사고를 냈다면 환자가 처벌을 원치 않을 땐 공소 제기(기소)가 제한된다. 피해액 전액을 배상하는 종합보험에 가입한 경우라면 '필수의료 의사’에 한해 환자 의사와 관계없이 공소 제기가 제한된다. 필수의료 의사가 사망 사고를 냈다면 기소는 가능하지만 처벌이 감경된다. 복지부는 "필수의료 의사는 형사처벌 부담을 줄이고 환자는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환자들 반응은 싸늘하다. 가장 먼저 문제 삼는 내용은 종합보험 가입 시 환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의사를 기소할 수 없다는 부분이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현행 제도는 의료사고 소송에서 환자가 입증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지만 정작 의료 기록은 병원에 있어 입증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형사 고소를 하면 그나마 공권력에 기대 사고 경위를 조사할 수 있는데 특례법이 그 길을 막아버렸다"고 비판했다.

입증 책임이 여전히 환자에게 남아 있다는 점도 불만 사항이다. 정부는 특례 적용을 위해선 의사가 의료분쟁조정 절차에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해 환자의 입증 책임이 완화된다는 입장이지만, 환자들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안기종 한국환자연합회 회장은 "의료분쟁조정은 이미 존재하는 제도이고 단지 의사 참여를 의무화하겠다는 것뿐"이라며 "조정 절차 안에서 여전히 환자가 의사의 사고 책임을 입증해야 하고,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감정이나 절차가 환자에게 유리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위헌적 법안이라는 지적도 있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2009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을 받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벤치마킹한 법안이기 때문이다. 해당 특례법은 운전자보험 가입을 조건으로 교통사고를 낸 사람을 형사 면책해주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전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의료행위는 사망이나 중상해를 막고자 위험을 감수하고 진행하는 부분이 있어 교통사고와 동일선상에 놓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29일 특례법에 대한 공청회를 열고 각계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방침이나, 환자단체들은 형식적 행사라며 비판하고 있다. 안선영 중증질환자연합회 이사는 "결국 정부와 의협이 (의대 정원) 증원 숫자를 놓고 협상하는 과정에 환자 생명만 갈아 넣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료사고 형사처벌 감경은 의사 사회의 숙원이었지만, 막상 대한의사협회(의협)도 정부 법안을 두고 실효성이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의협 비대위는 28일 성명문에서 "사망 사고는 면책이 아닌 처벌 감경 대상에 불과하고, 환자·보호자가 동의해야 공소 제기가 제한되는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의료사고 기소 건수가 높은 만큼 특례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3∼2018년 국내에서 의사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건수는 연평균 754.3건으로, 일본의 입건송치 건수(51.5건) 대비 14.7배, 영국의 기소 건수(13건) 대비 580.6배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기소 건수가 많은 것은 국내 의료분쟁조정제도가 부실한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남 국장은 "외국의 기소 건수가 적은 이유는 형사 절차가 아니라도 의료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근본적인 제도 개선은 하지 않고 공소 제기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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