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통첩 복귀 시한 D-1… 전공의는 감감무소식

입력
2024.02.28 19: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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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대표들에게 업무개시명령 교부 송달
경찰 의협 간부 수사… 사법 절차 본격 시동
환자 피해 신고·상담 671건, 의료진 ‘번아웃’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열흘째인 28일 인천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응급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열흘째인 28일 인천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응급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진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복귀 시한으로 최후통첩한 29일까지 단 하루 남았지만,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극히 일부 복귀 움직임은 있으나 대다수는 요지부동이다. 정부는 각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들을 직접 찾아가 업무개시명령을 송달하며 사법 절차 준비에 들어갔고, 경찰도 정부가 고발한 대한의사협회(의협) 전현직 간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의사를 기다리는 환자들도, 병원에 남은 의료진도, 의사 집단행동을 지켜보는 국민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분위기다.

미복귀 전공의 사법 처리 준비 마무리

한덕수(가운데) 국무총리가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한덕수(가운데) 국무총리가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보건복지부는 28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과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들의 자택에 직원을 보내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복지부 관계자는 “그동안 문자와 우편으로 명령을 전달했으나 휴대전화를 꺼놓거나 우편 수령을 거부하는 식으로 명령을 회피하는 경우가 있어서 일부 대상자에 한해 현장 교부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정절차법에 따라 당사자가 아닌 가족 등 대리인이 수령해도 업무개시명령 효력은 발생한다.

앞서 정부가 “29일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최소 3개월 면허정지, 수사 및 기소 등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한 만큼, 향후 사법 처리에 속도를 내기 위해 마지막 행정적 준비로 송달 효력 확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 복지부가 고발한 의협 전현직 간부 5명에 대한 경찰 수사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복귀를 주저하는 전공의들에게 압박을 가하는 경고 메시지인 셈이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아직 돌아올 조짐이 없다. 27일 기준 99개 수련병원에서 사직서 제출자는 9,937명(80.8%), 근무지 이탈자는 8,992명(73.1%)에 달한다. 그 가운데 9,267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이 내려졌고, 57개 병원 5,976명에겐 명령 불이행 확인서가 징구됐다. 몇몇 병원에서 필수의료 과목 전공의가 돌아와 환자 진료를 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소수에 불과한 상황이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복귀 소식은 전혀 없다”며 “전임의 계약이 곧 끝나는 데다 신규 인턴 100여 명도 거의 다 임용을 포기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경기도 소재 종합병원 교수는 “전공의들과 아예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설사 연락이 된다 해도 워낙 정부에 대한 반감이 심해 복귀를 설득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의정 대화는 난항… 남은 의료진 ‘번아웃’

정부가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 공백을 줄이기 위해 간호사에게 의사 업무 일부를 맡기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이 시작된 27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중환자실에서 간호사들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 공백을 줄이기 위해 간호사에게 의사 업무 일부를 맡기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이 시작된 27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중환자실에서 간호사들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사태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지만 전공의들은 정부와의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공의 대표들에게 여러 번 만남을 제안했지만 일단 접촉 자체가 잘 안 된다”며 “대화의 자리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전문의는 “2000년 의약분업이나 2020년 총파업 때는 지도부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개별 사직 방식이라 지도부가 없는 셈”이라며 “정부와의 협상에 대표자로 나가면 사법 처리 1순위인데 누가 나서겠냐”고 짚었다.

그동안 정부 협상 파트너였던 의협이 “의사가 있어야 환자가 있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 등 험악한 언사로 의료계 신뢰를 잃은 탓에 소통 창구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의대 교수들이 중재에 나섰지만 의협이 발끈하면서 의료계는 내분 조짐마저 일고 있다. 대통령실은 “대형병원과 중소병원, 전공의와 개원의, 의대생과 교수 등 각각 입장이 달라 의협이 대표성을 갖기는 좀 어렵다”며 “의료계 내에서 중지를 모아 대표성을 갖춘 구성원들을 제안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그러는 사이 환자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복지부가 운영하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공식 접수된 피해 신고 및 상담 사례만 19~27일 671건으로 집계됐다. 그중 법률 지원 요청도 67건이나 된다. 소방청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응급환자를 거부하는 병원이 늘면서 구급대가 병원을 직접 찾지 못하고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 수배를 요청한 사례가 16~26일 하루 평균 6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8건)보다 73.7% 급증했다.

환자 곁을 지키는 의료진의 ‘번아웃’도 우려된다.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의사는 “이러다 사직이 아니라 순직하게 생겼다”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했다. 한 대학병원 간호사는 “정부 지침에 따라 진료보조(PA)간호사들이 투입돼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과로로 자칫 의료사고라도 날까 두려움에 떨며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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