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마저 사직 움직임... "대란 넘어 마비될라" 혼돈의 병원 현장

입력
2024.03.17 17:33
수정
2024.03.17 17:48
8면

의대 교수 집단사직 예고 후폭풍 속속
중증환자, 수술 앞두고 연기·취소 불안
간호사도 동요 "모든 업무 우리한테?"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김태연 기자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김태연 기자

"의사 선생님이 수술 일정이 변경될 수도 있다고 하네요."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최주영(37)씨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어린 딸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은 지난주 신장암 판정을 받고 입원해 항암 치료 중이다. 하지만 전날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집단사직을 예고하면서 예정된 수술이 연기되지 않을까 밤잠을 설쳤다. 최씨는 "그나마 세브란스가 다른 병원에 비해 형편이 괜찮다고 들었다"면서도 "만약 우리 아이를 담당하는 교수님도 사직서를 제출하면 수술이 뒤로 밀리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전국 20개 의대 교수들로 구성된 비대위는 정부의 입장이 바뀌지 않으면 오는 25일 집단사직을 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물론 가르치는 일만 그만둘 뿐 진료는 계속하겠다는 방침이나 전공의 파업의 부작용을 톡톡히 체감한 병원 현장에선 환자 돌봄마저 중단될까 봐 근심 한가득이다. 밤샘 당직을 감내하며 현장을 지킨 교수들까지 떠나면 대란을 넘어 의료계가 '마비'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교수 사직하면 진료도 중단?"... 환자들 발 동동

1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휴게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태연 기자

1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휴게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태연 기자

이날 서울의 이른바 '빅5' 병원을 둘러보니 진료대기실 등 곳곳에서 의대 교수들의 사직 예고 소식을 듣고 불안에 떠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보호자 최보겸(40)씨는 "아이가 뇌수술을 받고 마비 증세와 언어장애가 생겨 재활이 필요한데, 교수님들까지 그만두면 재활 치료에 차질을 빚을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자녀의 뇌전증 치료를 위해 제주에서 올라온 김모(42)씨도 "아이 상태가 안 좋다 보니 의료대란 보도를 볼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고 털어놨다.

교수와 함께 고군분투 중인 간호사들도 동요하고 있다.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만약 교수들까지 삐걱대면 모든 업무를 떠안아야 하는 탓이다. 수도권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A씨는 "병원이 말 그대로 난장판"이라며 "어떤 부서는 수술이나 입원 환자가 줄어 무급 휴직을 하고 있지만, 다른 부서는 인턴이 하던 일까지 도맡아 과로가 일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다 병원이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고 한탄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아직 교수 사직서 제출이 이뤄지지 않아 현장 모니터링을 한 후 대응 방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거세지는 교수들 반발... 병원도 예의 주시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HJ비즈니스센터에서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 논의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HJ비즈니스센터에서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 논의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교수들의 대정부 압박 강도는 계속 거세지고 있다. 비대위가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16개 의대 교수들의 자발적 사직서 제출을 결의한 데 이어, 비대위에 불참한 성균관대 의대 교수들 역시 단체행동을 시사하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 비대위는 "사태가 악화해 파국에 이르면 교수들은 진료현장을 떠나 대의를 위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곳은 빅5 병원 중 하나인 삼성서울병원 교수들이 소속돼 있어 이들이 사직서 제출을 결행할 경우 현장 혼란은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대형 병원들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비대위에서 18일 사직서 제출 날짜를 두고 재논의를 한다고 들었다"며 "병원 교수들은 환자 걱정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해 사태 추이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도 "교수들이 성명서만 내놓은 단계여서 당분간 종전대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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