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베란다도 기후위기 해결사? 탄소정원의 모든 것

입력
2024.04.24 04:30
수정
2024.04.24 09: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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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기후행동]
탄소 흡수하고 저장하는 탄소정원
도심 탄소배출 40% 저감 효과
자투리땅, 옥상 작은 나무·꽃도 효과
베란다 텃밭으로 소소하게 시작을

편집자주

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일상 속 친환경 행동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열받은 지구를 식힐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는 당신을 위해 바로 실천 가능한 기후행동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지난 19일 방문한 국립세종수목원의 탄소정원. 방문객들이 정원에 핀 꽃을 보며 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세종=신혜정 기자

지난 19일 방문한 국립세종수목원의 탄소정원. 방문객들이 정원에 핀 꽃을 보며 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세종=신혜정 기자

“어머, 엄청 예쁘다!” 지난 19일 오전 국립세종수목원, 정원을 거닐던 방문객들이 보랏빛 백리향을 보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들고 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죠. 붉은 꽃이 핀 아로니아 나무와 말채나무, 느티나무 등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이곳은 여느 정원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요. 사실 이 정원은 지구를 위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산림청 산하 한국수목정원관리원(한수정)이 2022년부터 정성 들여 가꾸고 있는 ‘탄소정원’이거든요.

탄소정원은 말 그대로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정원입니다. 식물의 탄소흡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가급적 탄소가 덜 발생하는 방식으로 정원을 관리하는 거죠. 식물은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물과 햇빛으로 광합성을 합니다. 흡수한 이산화탄소는 잎과 줄기, 뿌리에 저장되죠. 광합성이 끝나면 식물은 대기 중에 산소를 배출합니다.

탄소 흡수하는 식물의 광합성, 기후위기 대응의 '슈퍼파워'

식물에게는 그저 일상인 생명활동이 기후위기에 맞설 ‘슈퍼파워’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를 가속하는 온실가스인 탄소를 저감할 방법이니까요. 많은 과학자들이 인위적으로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기 위한 기술을 연구 중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식물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방법으로 꼽힙니다.

한번 심으면 효과가 점점 커지는 것도 장점이죠. 10년생 상수리나무는 연간 6.2㎏의 탄소를 흡수하는데, 70년생이 되면 연간 16.3㎏을 흡수하거든요. 더 중요한 건 한번 흡수한 탄소는 나무에 계속 저장된다는 겁니다. 탄소 흡수 효과가 높은 나무들을 이용해 대규모로 숲을 조성한다면 기후위기 대응 효과도 매우 클 것입니다.

지난 19일 국립세종수목원 내 탄소정원에 다양한 나무와 꽃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세종=신혜정 기자

지난 19일 국립세종수목원 내 탄소정원에 다양한 나무와 꽃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세종=신혜정 기자

정작 대부분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도시에는 숲을 만들 공간이 부족합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92%가 국토면적의 16.7%에 불과한 도시지역에 살고 있죠. 나무 숲보단 빌딩 숲 찾기가 더 쉬운 상황이지만, 도시에서도 정원과 텃밭을 만든다면 효과는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2022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연구진이 뉴욕시의 5개 구역을 연구한 바에 따르면, 도심 속 나무는 물론 꽃과 풀 등은 도시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40% 이상을 흡수했다고 합니다. 연구 대상 지역의 단 10%만이 자연 상태의 숲이었는데요, 개발된 90% 지역에 조성된 도시 정원이나 텃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결론입니다.

도심 탄소정원에 적합한 나무·꽃은?

도시 정원이 이렇게나 효과가 있다니, 당장 호미를 들고 나만의 정원과 텃밭을 가꿔보고 싶지 않나요? 아파트나 빌라에 살아서 마당이 없더라도 괜찮습니다. 많은 도시에서 자투리땅을 시민들에게 대여하고 있으니까요.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운영한 도시텃밭이 무려 5,247곳으로 총 222헥타르(㏊)에 달했다고 해요. 이 중 1,519곳이 옥상이었죠.

하지만 빈 땅에 식물을 심는다고 다 같은 ‘탄소정원’이 되는 건 아닙니다. 도시 정원은 좁은 땅을 활용하는 만큼, 비교적 탄소 흡수를 잘하는 식물을 심는 것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도심에는 특히 덩치가 작은 나무, 즉 ‘관목’ 중 탄소 흡수 능력이 우수한 것을 골라 심는 것이 좋습니다. 느티나무나 은행나무 등 크기가 큰 ‘교목’을 심을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자투리땅에 키우긴 무리이니까요. 한수정에 따르면 관목 중 히어리는 연간 263.71g의 탄소를 흡수해 탄소정원에 적합합니다. 박태기나무(260.07g), 병꽃나무(236.13g)도 탄소 흡수 능력이 뛰어나죠.

관목 중 탄소 흡수 능력이 뛰어난 나무. 왼쪽부터 히어리, 박태기나무, 병꽃나무. 한국수목정원관리원 제공

관목 중 탄소 흡수 능력이 뛰어난 나무. 왼쪽부터 히어리, 박태기나무, 병꽃나무. 한국수목정원관리원 제공

꽃이나 허브를 심어도 탄소 흡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박하(페퍼민트)나 구절초, 붓꽃, 노랑꽃창포 등이 탄소 흡수를 잘한다고 해요. 이들 식물을 이용해 약 200㎡(60평) 크기의 옥상 정원을 가꾼다면, 연간 600㎏의 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옥상에 정원이나 텃밭을 가꿀 경우 빛을 막아주기 때문에 건물의 온도를 낮추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효과도 볼 수 있죠.

빗물도 탄소정원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수도시설을 설치해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온실가스가 배출되기 때문이죠. 특히 빗물은 식물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양제라고 합니다. 노회은 한수정 정원사업센터장은 “빗물에 함유된 질소와 다량의 미네랄이 식물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며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이 걱정될 경우 빗물을 받아 하루 이틀 정도 불순물을 가라앉힌 뒤 사용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국립세종수목원의 탄소정원에서는 빗물저장시설을 이용해 빗물을 활용합니다. 한국수목정원관리원 제공

국립세종수목원의 탄소정원에서는 빗물저장시설을 이용해 빗물을 활용합니다. 한국수목정원관리원 제공


베란다 텃밭도 탄소발자국 줄이는 효과

자투리 땅을 분양받아 정원을 가꾸는 게 부담스러운 분도 있으실 겁니다. 그럴 땐 베란다 등 실내에서 작은 정원을 가꾸는 것도 꽤 의미 있는 기후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실내에서 탄소정원을 만들 경우 홍지네고사리처럼 비교적 탄소 흡수력도 좋고 미세먼지 저감효과가 높은 식물을 키우는 걸 추천합니다. 다만 실내 식물의 탄소 흡수량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화분에서 자라는 만큼 크기가 커지는 데 한계가 있거든요.

경기 파주의 한 아파트에 조성된 베란다 텃밭.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기 파주의 한 아파트에 조성된 베란다 텃밭. 한국일보 자료사진

실내에서는 베란다 텃밭 등을 가꾸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게 한수정의 설명입니다. 텃밭에서 직접 수확한 채소를 먹는다면 농산물 수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바이오차(Bio-Char)’를 텃밭 흙에 섞는 것도 탄소정원을 위한 ‘치트키’입니다. 바이오차는 목재를 고온에서 가공한 일종의 숯인데요, 오랜 시간 분해되지 않고 토양 속에 탄소를 가두기 때문에 ‘탄소감옥’이라고도 불립니다. 바이오차를 10~30% 섞을 경우 식물이 더 잘 자라고, 화분에 탄소를 가두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노회은 센터장은 "도심에서 식물을 심고 가꾸는 것은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기후행동"이라며 "시민들의 실천이 모인다면 나를 위한 정원은 곧 지구를 위한 정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9일 국립세종수목원 내 탄소정원에서 노회은 한국수목정원관리원 정원사업센터장이 탄소정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종=신혜정 기자

지난 19일 국립세종수목원 내 탄소정원에서 노회은 한국수목정원관리원 정원사업센터장이 탄소정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종=신혜정 기자


세종=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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